반응형 이권 세 번째 시집 『그럼에도 불구하고』62 시(詩) 마술이 필요한 시간 오늘 소개할 시는 저의 세 번째 시집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 실린 ‘마술이 필요한 시간’입니다. 마술이 필요한 시간 / 이권 한 걸음도 앞으로 나갈 수 없는 마음이어서 스스로 감옥을 짓고 징역살이하고 있다는 너 이 세상에 죄 없이 사는 사람이 어디 있냐며 또 다른 네가 너를 달래고 있다 지금은 너도 속고 나도 속는 마술이 필요한 시간 거짓이든 트릭이든 그것은 중요치 않다 네 몸에서 비둘기가 날든 장미꽃이 피어나든 옛사랑을 소환하든 그것은 너의 자유 많은 사랑이 허용되지는 않겠지만 살다 보면 네 몸이 마술을 부리듯 온몸 가득 꽃을 피워 올릴 때가 있을 것이다 * 이권 시집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아실. 2023. 03. https://link.coupang.com/a/SBd98 그럼에도 불구하고:이권 시.. 2023. 12. 19. 딱 한 번이라는 말 / 이권 오늘 소개할 시는 저의 세 번째 시집 『그럼에도 불구하고』에 수록된 ‘딱 한 번이라는 말’입니다. 딱 한 번이라는 말 / 이권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내 서툰 사랑에 경고를 보내는 당신 딱 한 사람 당신만 오롯이 제 가슴에 모시겠으니 바쁘시더라도 부디 왕림하시어 저를 한번 꼼꼼히 읽어봐주세요 사랑은 늘 위험한 거래라 수를 잘못 읽고 하수를 두었다가는 문전박대를 당하고 쫓겨나기 마련이죠 딱 한 번만이라도 좋으니 옛사랑을 소환해주신다면 다른 사랑 넘보지 않고 열심히 당신을 사랑할 것 같습니다 사랑이 끝나면 암컷에게 제 몸뚱이를 내어주는 검은과부거미의 수컷처럼 툭하면 하나 남은 목숨까지 내걸고 던지는 딱 한 번이라는 말 딱 한 잔만 걸치고 실수 없이 당신에게 돌아갔으면 좋겠습니다 * 이권 시집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3. 12. 13. 너를 복사하다 오늘 소개할 시는 저의 세 번째 시집 『그럼에도 불구하고』에 실린 ‘너를 복사하다’ 입니다. 너를 복사하다 / 이권 오월이 일란성 쌍둥이처럼 오랑캐꽃과 애기똥풀을 데리고 두 번이나 지나가고 있다 철 이른 계절을 메꾸기 위해 오월과 유월 사이에 여벌로 끼워 넣은 공달 사람들은 삼재가 들지 않는 윤달이 찾아들었다며 수의를 해 입으며 죽음을 흉내 냈다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아 귀신도 모르고 지나간다는 완전 범죄를 노리기 좋은 공달 너와 나의 간극을 메꾸기 위해 또다시 너에게 가는 길 푸른 오월이 한 번 더 너를 복사해내고 있다 * 이권 시집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아실. 2023. 03. https://link.coupang.com/a/SBd98 그럼에도 불구하고:이권 시집 COUPANG www.coupang... 2023. 12. 12. 세상이 슬퍼 보일 때 / 이권 오늘 소개할 시는 저의 세 번째 시집 『그럼에도 불구하고』에 수록된 ‘세상이 슬퍼 보일 때’입니다. 세상이 슬퍼 보일 때 / 이권 수돗가에 쭈그리고 앉아 얼갈이배추를 다듬고 있는 아내의 아랫마기와 윗마기 사이로 허연 잔등이 드러나 보일 때. 여름날 배를 드러내놓고 자는 다 큰 아들놈의 수염 듬성듬성한 얼굴을 보았을 때. 시 합평회 뒤풀이 자리, 해진 양말을 뚫고 나온 김 시인의 엄지발가락이 식탁 밑에서 멀뚱멀뚱 두 눈을 뜨고 있을 때. 출근길 어린이집 앞에서 아이보다 먼저 울음이 쏟아질 것 같은 아이 엄마의 동동 발걸음을 만났을 때. 이웃집 영미 할머니 손잔등에 흰나비 한 마리 날아들 때. 세상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짠하고 슬프지 않은 것이 없어 누군가 이 세상을 살짝만 흔들어도 말가웃의 울음이 와르르 쏟.. 2023. 12. 6. 집 없는 달팽이 / 이권 오늘 소개할 시는 저의 세 번째 시집 『그럼에도 불구하고』에 실린 ‘집 없는 달팽이’입니다. 집 없는 달팽이 / 이권 세상에서 가장 느린 속도로 집 없는 달팽이가 이삿짐도 없이 이사를 가고 있다 잠시 가던 길을 멈추고 오늘 일진을 점치고 있는 달팽이 그의 뿔이 가리키는 곳으로 저녁 해가 지고 있다 평생 집 한 채 지어본 적도 없고 세간살이 한 번 장만해본 적 없는 집 없는 달팽이 온몸이 부끄러움투성이인 알몸뿐이지만 옷 한 벌 지어 입어본 적이 없다 집이 싫어 집을 버리고 나온 아이들이 달빛 어둠을 덮고 한뎃잠을 자는 마을에는 저보다 큰 집을 등에 지고 사는 죽어서야 제 집을 버리는 명주달팽이를 닮은 족속들이 산다 * 이권 시집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아실. 2023. 03. https://link.cou.. 2023. 12. 4. 석모도 / 이권 오늘 소개할 시는 저의 세 번째 시집 『그럼에도 불구하고』에 실린 ‘석모도’입니다. 석모도 / 이권 늦가을 오후 보문사 나한전 앞에서 산사의 가을 소리를 듣는다 극락전 수막새 기와에 쌓이는 풍경 소리 남새밭을 구르는 목탁 소리 구구거리는 산비둘기 울음소리 이 모든 소리가 오늘의 법문인 듯 부처님도 스님도 도무지 말이 없다 일주문 밖 솔밭식당에서 막걸리 한 병 도토리묵 한 접시 시켜놓고 저녁 바다가 끌고 오는 파도 소리 듣는다 땅바닥에 눌러앉아 순무 김치와 마른 새우를 파느라 반쯤은 부처가 된 할머니 석모도 가을 풍경과 보문사 저녁 종소리를 한 됫박 덤으로 얹어주고 있다 * 이권 시집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아실. 2023. 03. https://link.coupang.com/a/SBd98 그럼에도 불구하.. 2023. 11. 28. 맹물에 찬밥 말아 먹으며 / 이권 오늘 소개할 시는 저의 세 번째 시집 『그럼에도 불구하고』에 실린 ‘맹물에 찬밥 말아 먹으며’입니다. 맹물에 찬밥 말아 먹으며 / 이권 백중날 아침 아내는 한 달에 한 번 하는 계 모임 하려 꽃단장을 하고 부평에 갔다 홀로 남은 나는 심심한 나머지 그동안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울까 하다 그만둔다 점심때가 지나도 아내를 따라간 설거지 소리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양은 쟁반에 찬밥 한 사발 오이지 한 접시 올려놓고 맹물에 찬밥 말아 먹는다 사기대접에 쌓이는 하얀 숟가락 소리 내 몸속을 타고 내려가는 맑은 물소리 또 다른 내가 엿듣고 있다 때론 나도 내 안의 소리가 궁금할 때가 있다 * 이권 시집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아실. 2023. 03. https://link.coupang.com/a/SBd98 그럼에.. 2023. 11. 24. 교연에게 / 이권 시집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소개할 시는 저의 세 번째 시집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 시린 '교연에게' 입니다. 교연에게 / 이권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낯이 익은 아이가 전생에 내 딸이었을 것 같은 아이가 어느 아득한 인연을 끌고 와 변방에 작은 공화국 하나를 세웠다 모든 이의 축복을 받으며 12월의 신부가 된 아이야 모든 신이 항상 너를 지켜주고 보살펴주기를 세상에서 네가 가장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그런 너를 위해 기도하기를 그리하여 너의 모든 꿈이 이루어지기를 네가 너무 외롭지 않기를 슬프지 않기를 너와 함께하는 모든 날이 행복하기를 네가 사는 지붕 위에 항상 따스한 바람이 불기를 모든 이들 앞에 네가 평등하기를 그리고 자유롭기를 너의 공화국에 언제나 사랑과 평화가 함께하기를 - 『그럼에도 불구하고』(달아실, 2023) h.. 2023. 11. 23. 꽃의 신도 / 이권 오늘 소개할 시는 저의 세 번째 시집 『그럼에도 불구하고』에 실린 ‘꽃의 신도’입니다. 꽃의 신도 / 이권 그녀는 꽃을 섬기는 꽃의 신도입니다 어느 봄날 꽃구경을 나왔다가 꽃들이 전하는 말씀 꽃말을 듣고 꽃의 신도가 되었습니다 집안 가득 꽃을 사들이고 꽃무늬 치마를 입고 꽃무늬 벽지로 도배를 한 방에 들어가 한바탕 꽃 꿈을 꾸다 나오기도 합니다 꽃은 나비를 불러 모으고 그녀는 나를 불러 모든 꽃의 성지인 장미 화원으로 꽃의 성지순례를 떠나는 것입니다 더러는 꽃이 지고 난 후의 덧없음을 걱정하지만 꽃이 지는 것은 또 다른 계절을 준비하기 위한 몸짓이라는 것을 압니다 한 송이 꽃으로 피어난 당신 이 봄엔 어쩔 수 없이 나도 당신의 말씀을 수지독송하는 꽃의 신도가 되었습니다 * 이권 시집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3. 11. 17. 어느 신비한 혼령이 있어 / 이권 오늘 소개할 시는 저의 세 번째 시집 『그럼에도 불구하고』에 수록된 ‘어느 신비한 혼령이 있어’ 입니다. 어느 신비한 혼령이 있어 / 이권 구인·구직 전단지가 봄바람에 제 몸을 핥아대고 있는 변두리 시외버스 정류장. 부여 가는 버스 기다리다 바라본 발밑. 십자가를 메고 고난의 길로 들어선 예수처럼, 추락한 나비의 날갯죽지를 끌고 가는 개미 한 마리 보인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이 세상을 건너가고 있는 아이들처럼 개미도 잘못 들어선 길을 수없이 수정하면서 저 신작로를 건너왔을 것이다. 싫든 좋든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생의 과업을 수행하다 죽음에 이르러서야 이승에서의 과업이 종료되는 우리네처럼. 개미에게도 어느 신비한 혼령이 있어 집 밖이 위험한 줄 알면서도 마음보다 몸이 저를 끌고 집 밖으로 나왔을 .. 2023. 11. 9. 오리지널 / 이권 오늘 소개할 시는 저의 세 번째 시집 『그럼에도 불구하고』에 실린 ‘오리지널’ 시입니다. 오리지널 / 이권 뚜레쥬르 빵집 햇볕보다 더 따뜻하고 포근한 LED 불빛이 소보루빵 위에 내려와 있다 천장 에어컨에서 산바람보다도 바닷바람보다도 더 시원한 바람을 복사 중이다 계절이 바뀌어도 지지 않는 장미꽃 지극히 사무적인 자세로 계산대에 앉아 있다 소녀시대 윤아가 빵집 창문 앞에 붙어 어제도 오늘도 웃고 있다 재방송되는 TV 연속극 사내는 어제보다 더 달콤한 사랑을 고백 중이다 하 수상한 시절 주객이 전도되었다. 이권 시집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아실. 2023. 03. https://link.coupang.com/a/SBd98 그럼에도 불구하고:이권 시집COUPANGwww.coupang.com"이 포스팅은 쿠팡.. 2023. 11. 8. 후살이 / 이권 오늘 소개할 시는 저의 세 번째 시집 『그럼에도 불구하고』에 수록된 ‘후살이’입니다. 후살이 / 이권 어머니 죽고 내 나이 스무 살 때 아버지의 후처가 된 새어머니 아이를 못 낳아 전 남편에게 소박맞고 뒤웅박 팔자가 되었다고 한다 자식 한 번 낳아본 적 없이 아버지의 후살이만 하다간 새어머니 고향 집 화단에 나리꽃 붉게 핀 날 이 세상을 떠나갔다 어머니 대신 계모로 새어머니로 의붓어머니로 불리던 여자 오늘은 아버지 산소 옆 하얀 도라지꽃으로 피어 있다 * 이권 시집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아실. 2023. 03. https://link.coupang.com/a/SBd98 그럼에도 불구하고:이권 시집 COUPANG www.coupang.com "이 포스팅은 쿠팡 파트너스 활동의 일환으로, 이에 따른 일정액.. 2023. 11. 7. 이전 1 2 3 4 5 6 다음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