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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소개할 시는 저의 세 번째 시집 『그럼에도 불구하고』에 실린 ‘복화술사 아버지’입니다.
복화술사 아버지 / 이권
붉은 청양고추 두어 개, 굵은 소금 한 꼬집, 물 한 됫박 붓고, 바람 든 무와 속이 텅 빈 아버지의 발걸음을 숭숭 썰어 버무리면 시큼한 나박김치가 될 것 같은 봄날. 툇마루에 앉아 오랜 세월에도 뜸 들지 않은 설익은 나이를 하나둘 세고 계신 아버지.
막행막식莫行莫食의 계절을 건너오는 동안 아버지 몸속으로 날아든 검은 나비 떼. 몸 곳곳에 하얗게 알을 슬어놓았다. 시절이 하 수상할 때마다 수런수런 알들은 부화되고 아버지 심장 속을 걸어 다니고 있는 검은 벌레의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살을 섞지 않아도 눈빛만으로도 서로를 사랑할 수 있는 복화술의 시대. 아버지 몸속에서 폭탄 돌리기 게임에 열중인 검은 벌레들. 파란 알약을 드시고 겨드랑에 날개가 돋아난 아버지. 한 마리 나비가 되어 서쪽 하늘로 훨훨 날아갔다. 점심 배불리 먹고 책상머리에서 꾼 늦은 봄날의 꿈이었다.
* 이권 시집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아실. 2023.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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