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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에게 반하다.
시 배달부 오늘의 시

헌 구두의 이별법 / 이권

by 시(詩) 배달부 2023. 6.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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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출처 pixabay.

 

오늘 소개할 시는 저의 어느 시집에도 발표되지 않은 미발표 시 '헌 구두의 이별법' 입니다.

 

 

헌 구두의 이별법 / 이권

 

 

  저는 십 년 전 주인님께서 금강제화 상설매점에서 구매한 260mm 리갈 검정 구두에요. 새 구두이었을 때 주인님 발과 제가 맞지 않아 트러블이 일어나긴 했지만, 곧 때 빼고 광내던 호시절이 찾아왔지요. 그때까지만 해도 신발에 대한 예의가 남아있던 때여서 전철 안에서 신발을 밟으면 미안하다고 사과도 하고 맛 간 여자가 강물에 뛰어들 때도 신발만큼은 가지런히 벗어 놓고 뛰어내리던 때였어요.

 

  빨간 불빛만 보면 덩달아 달아오르던 발걸음도 가지 말아야 할 곳을 몰래 다녀온 발걸음도 어둠 속에 몰래 숨겨주곤 하였지요. 아침이 되면 주인님과 제가 다녀왔던 길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증거인멸 되었어요. 나이가 들수록 주인님이 너무 한쪽만 편애한 탓에 늙은 우파처럼 제가 점점 오른쪽으로 기울기 시작했어요. 몇 번의 굽을 갈고 새로운 노선 투쟁을 시도했지만, 자꾸만 왕년을 기웃거리는 주인님. 옆구리가 터지고 코가 깨지고서야 주인님은 저를 길 건너 구두병원에 수선 의뢰했어요.

 

  반짝반짝 물광이 빛나던 시절로 돌아가기에는 이미 제가 너무 먼 길을 와버렸어요. 오늘은 주인님께서 작정이라도 한 듯 저를 신고 그동안 다녔던 길을 천천히 둘러보았어요. 맨 먼저 길 건너 은하수 다방에 들려 김 양과 노닥노닥 커피 한 잔을 마시고는 밤만 되면 바비인형 같은 아가씨들이 전시되던 니나노 술집이 있던 부평깡시장까지 걸어갔어요.

 

  노제라도 지내려는 듯 주인님과 제가 다녔던 길을 오랫동안 보여주었어요. 이제 주인님과 제가 헤어져야 할 시간. 주인님이 저를 버리기 전에 제가 주인님을 버릴 때, 제가 떠난다고 꽃이 진다고 너무 서운해하지는 마세요. 만남이 있으면 이별이 있는 법. 새 신을 신고 떠나는 주인님의 앞날에 무한한 영광이 함께 하기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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