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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에게 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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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권 첫 번째 시집 『아버지의 마술』60

마가렛 꽃 / 이권 오늘 소개할 시는 저의 첫 번째 시집 『아버지의 마술』에 수록된 ‘마가렛 꽃’ 입니다.  마가렛 꽃 / 이권  비 그친 오후 하늘공원 가는 길 마가렛 꽃이 지천으로 피어있다 겨우내 꽃의 빛깔을 고르고 꽃잎의 각도와 길이를 맞추었을 마가렛꽃 꽃잎 가장자리에부터 흰색을 칠하고 꽃술에 노란 황금을 입히는 꽃단장이 한창이다 그녀의 꽃받침으로 서 있는 동안 꽃잎 몇 개가 떨어져 내렸다 가끔 휘청거리는 나에게 어깨를 내어 주기도 하던 그녀 마가렛 꽃을 닮아갔다 온몸이 식물도감같이 사시사철 잎과 꽃이 돋아나는 여자 너무 부끄러운 혼인색을 지녀 나비의 발자국이 온몸에 남는 여자 내 꽃밥이 꽃실을 타고 그녀의 씨방으로 옮겨져 밑씨가 되어가는 사이 나는 그녀와 똑같은 향기와 색깔을 갖는다 너와 내가 하나인  암수가 하나인.. 2024. 5. 17.
건들장마 / 이권 오늘 소개할 시는 저의 첫 번째 시집 『아버지의 마술』에 수록된 ‘건들장마’입니다.  건들장마 / 이권  건들장마 속 작달비가 지나간 아침 무 싹이 손톱만큼 올라와 있다  배추벌레가 사각사각 아침 요기를 끝낸 배추잎 푸른똥 몇 개 점점이 놓여 있다 어미젖을 물고 있는 애호박의 몸무게는 닷 돈가량 늘어났고 갓 뒷물을 끝낸 며느리밑씻개 잎은 축축이 젖어있다 방아깨비가 한 홉 정도의 가을을 찧어내고 있고 막내 조카 영희 가슴이 자두 알 만하게 올라와 있다 3조 2교대 야간 근무를 마치고 돌아온 내 턱수염은 한 치 정도 자라 있고 허리는 어제보다 1도 정도 휘어져 있다 하늘은 뻐꾸기 울음소리로 반쯤 젖어 있고 세상은 어제보다 말가웃 더 늙어졌다다 건들건들 지나간 건들장마 탓이다 *이권 시집 『아버지의 마술』 애.. 2024. 5. 8.
아내의 사계四季 / 이권 오늘 소개할 시는 저의 첫 번째 시집 『아버지의 마술』에 수록된 아내의 사계입니다.   아내의 사계四季 / 이권   이른 아침 라디오에서 비발디의 사계가 흘러나오고 있다. 잠에서 깨어난 아내, 내게 손을 뻗쳐 오고 있다. 느슨하게 풀리는 아내의 몸을 고르고 현을 맞추는 것은 나의 오래된 습관, 아내의 몸에는 언제든지 계절의 흐름을 연주할 수 있는 바이올린이 숨겨져 있다. 아내를 연주하기 위해서는 부드럽고 섬세하게 활을 켜야 한다.  아직은 서로가 서로를 탐색 중 아내의 치골에 감겨있던 바이올린 3번 현을 누르자 동그랗게 몸을 말아 올리며 팽팽히 감겨오는 아내. 살랑살랑 바람이 일고 아내의 몸속에서 물새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비발디의 사계가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자 아내의 몸에 먹장구름이 둥둥 떠다니고 .. 2024. 4. 28.
파안대소 / 이권 오늘 소개할 시는 저의 첫 번째 시집 『아버지의 마술』에 실린 ‘파안대소’입니다. 파안대소 / 이권 동인천에서 을왕리 해수욕장 가는 버스 안 아이 엄마는 차창 밖 보고 있고 다섯 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가 나를 보며 웃고 있다 갓 피어난 꽃 한 송이 내밀고 있는 아이 그 웃음이 환하게 내 몸으로 번진다 목젖이 다 보이도록 파안대소하는 바다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꽉 찬 웃음이다 하늘 한쪽이 기어코 무너져 내린다 웃음은 몸이 피워내는 또 하나의 꽃 웃음처럼 아름다운 꽃을 본 적이 없다 *이권 시집 『아버지의 마술』 애지. 2015. 06. 2024. 4. 22.
수상한 계절 / 이권 오늘 소개할 시는 저의 첫 번째 시집 『아버지의 마술』 에 수록된 '수상한 계절'입니다. 수상한 계절 / 이권 헤어진 애인한테 전화가 왔습니다. 전화선이 가느다랗게 떨고 있었습니다. 그녀가 울고 있는 것이 분명했습니다. 나는 전화선 너머 그녀의 목소리를 가만히 매만지고 있었습니다. 아직도 나는 너만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어둠 속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잠시 빛나고 있었습니다. 지난가을 낙엽 쌓인 거리에서 우리는 처음 만났습니다. 나를 사랑한다며 낯선 사내의 흔적이 있는 그녀의 집으로 나를 불러들였습니다. 나는 그녀의 문간방에 세간을 들이고 살림을 차렸습니다. 꽃피는 계절로 들어서자 그녀한테 새로운 남자가 생겼다고 했습니다. 그녀에게 봄에 잘 어울리는 새로운 사내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계절이 바뀌어서 어쩔 .. 2024. 4. 12.
꽃의 쿠데타 / 이권 꽃의 쿠데타 / 이권 아이스크림처럼 달콤하고 키스처럼 매혹적인 쿠데타 꽃들이 명명한 d-day 이가 다가오고 있다 반란군의 암구호는 개구리발톱과 꿩의바람꽃 초록의 반란군 붉은 꽃대를 밀어 올리며 건너편 강가에 진을 치고 있다 물총새가 나를 향해 총구를 겨누고 있다 꽃들이 횃불을 켜는 어둑새벽 강을 도하하는 반란군 그녀는 반란의 수괴가 되어 꽃의 맨 앞에 서 있다 봄이 되어도 나비 한 마리 불러들이지 못한 나의 사유지는 반란군에 의해 전격 점령된다 봄을 간음한 혐의로 나는 그녀에게 긴급 체포된다 반란은 꽃으로부터 시작되어 그녀에까지 번진 뒤 나에게 돌아왔다 하루에도 수없이 새로운 공화국이 탄생하고 멸망하는 봄, 사방이 온통 핏빛이다 *이권 시집 『아버지의 마술』 애지. 2015.06. 2024. 4. 3.
꽃 공양 / 이권 꽃 공양 / 이권 법당 안이 또르르 구르는 굴림 목탁 소리로 가득합니다 모두 관세음보살을 호명하며 관음기도에 열중입니다 법당 앞 백일홍도 꽃송이를 끌어모아 꽃 공양을 올리고 감나무에 앉아 있는 까치도 목울대 밀어 올리며 음성공양이 한창입니다 관세음보살님을 연호하며 내 곁을 스쳐 간 여인들의 대자대비를 생각합니다 관세음보살과 동침하고 나면 남순동자 같은 어여쁜 아이 하나 얻을 수 있을까요 오늘도 나를 부르시는 관세음보살님 당신을 우러러 바라보며 조용히 또 다른 관세음보살을 호명해봅니다 영희, 순복이, 지연이 내 곁에 머물다간 관세음보살이었습니다 *이권 시집 『아버지의 마술』 2015. 06. 2024. 3. 24.
봄날 / 이권 오늘 소개할 시는 저의 첫 번째 시집 『아버지의 마술』에 수록된 ‘봄날’입니다. 봄날 / 이권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만 흐르는 줄 알았다 어제저녁 하늘로 올라가는 물소리를 밤새 듣고서야 민들레는 민들레 키만큼 미루나무는 미루나무의 높이만큼 소나무는 소나무의 솔잎 수 만큼 산수유는 산수유의 꽃만큼 물줄기를 끌어 올리고 있었다 아지랑이 부피만큼 봄 들판도 봄을 끌어모으고 있었다 물오르는 소리에 흠뻑 젖어 있던 나도 내 나이만큼의 봄을 끌어 올렸다 물오르는 소리로 봄날 오후가 부산하였다 *이권 시집 『아버지의 마술』 애지. 2015. 06. https://link.coupang.com/a/UyWuN 아버지의 마술:이권 시집 COUPANG www.coupang.com 2024. 3. 17.
산수유나무 / 이권 오늘 소개할 시는 저의 첫 번째 시집 『아버지의 마술』에 실린 이 계절에 어울리는 ‘산수유나무’입니다. 산수유나무 / 이권 용궁사 오르는 개울 옆 산수유나무가 환하다 몇억 광년을 건너온 빛과 소리를 겨우내 숙성시킨 산수유나무 단 한 번의 추락을 위해 몇 겹의 지층을 걸어 나와 물관을 오르고 또 올랐을 산수유꽃 알몸으로 꽃을 피우고 꽃이 지고 나서야 제 몸에 꽃이 다녀간 흔적을 아는 나무 네 몸에 안테나를 꽂고 주파수를 찾으려 내 몸의 볼륨을 높이자 너에게서 꽃잎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떨어지는 꽃잎을 경배하는 봄 산수유나무가 쓰다 남은 빛과 소리가 길옆 개오동나무에 후생의 무늬로 쟁여지고 있다 산그늘 속으로 또 한 마음이 노랗게 지고 있다 *이권 시집 『아버지의 마술』 애지. 2015.06. 2024. 3. 14.
패랭이꽃 / 이권 오늘 소개할 시는 저의 첫 번째 시집 「아버지의 마술」에 수록된 '패랭이꽃' 입니다. 패랭이꽃 / 이권 산수유나무가 노란 얼굴로 편두통을 앓고 있는 봄 산모퉁이 돌아서면 죽음이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는 공원묘지가 있다 소란스럽게 죽음을 떠메고 왔던 사람들이 조용히 슬픔을 거두어 돌아가는 곳 다시는 호명되지 않을 이름표에 봄볕이 빛나고 있다 저물녘 지구를 한 바퀴씩 돌리고 가는 사람들 뒷덜미가 하얗다 저녁노을 번지는 공원묘지 수 세기 전 죽은 부전나비 무덤에서 나비의 날개 인양 하얀 패랭이꽃이 피어올랐다 * 이권 시집 「아버지의 마술」 2015. 도서출판 애지. 2024. 3. 12.
거미 / 이권 오늘 소개할 시는 저의 첫 번째 시집 『아버지의 마술』에 수록된 ‘거미’입니다. 거미 / 이권 저물녘 허공을 재단하고 있는 거미 바람의 나들목 배롱나무 가지에 그물을 치고 있다 오래전 한 여자를 불러들이기 위해 동쪽 하늘을 헐어 그녀가 지나가는 여울목에 그물을 친 적이 있다 그녀의 몸에 알을 슬어 사랑의 일가를 이루기 위한 요량이었다 푸른 벌판을 건너가는 민들레꽃씨와 저녁노을이 잠시 지나갔을 뿐 눈먼 고기 한 마리 잡히지 않았다 딱따구리가 한 땀 한 땀 가을 산을 박음질하는 오후 거미가 한 번의 합방을 위해 출렁다리를 건너가고 있다 흘레가 끝나면 암컷이 수컷을 잡아먹고 마는 저 치명적인 사랑 그렇게 사랑은 배롱나무 가지에 허묘 하나 만들어 놓고 천 길 절벽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이권 시집 『아버지의 마.. 2024. 2. 22.
시(詩) 다행이다 / 이권 오늘 소개할 시는 저의 첫 번째 시집 『아버지의 마술』에 실린 ‘다행이다’입니다. 다행이다 / 이권 나쁜 짓 하고 찜찜한 마음일 때 죄지은 마음 빌 수 있는 돌부처가 계시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사람의 아들로 엄마의 자식으로 태어났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오늘도 참방거리는 당신의 뒷물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저녁이 있다는 것이 아직도 후끈 달아오르는 나의 청춘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누군가 쓰다 남은 행운이 내게 찾아올 것 같은 희망이 있다는 것이 또 다른 당신을 만날 수 있는 내일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2024. 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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