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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에게 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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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권 첫 번째 시집 『아버지의 마술』60

소쩍새 우는 사연 소쩍새 우는 사연 / 이권 어느 봄날 소쩍새가 까만 울음을 껴안고 내 꿈속으로 날아들었다 그때부터 내 몸에 소쩍새 한 마리가 자라나기 시작했다 밤만 되면 앞산에서 소쩍새가 붉은 목울대를 밀어 올리며 울음을 길어 올렸다 덩달아 내 몸속 소쩍새도 소쩍, 소쩍, 울기 시작했다 소쩍새 슬피 우는 어느 여름날 막다른 골목에 나는 있었고 수많은 사람이 나를 버리고 있었다 사랑은 그렇게 매번 나를 숙청하고 있었고 국외로 추방된 망명자처럼 나는 그녀를 떠도는 난민이 되어갔다 내 슬픈 사랑에 소쩍, 소쩍, 화음을 넣어주는 소쩍새 그의 울음소리가 바람벽에 까맣게 찍히고 있다 오늘 밤 소쩍새의 울음소리 만큼 나는 자라날 것이다 *이권 시집[아버지의 마술]애지. 2015. 06. https://link.coupang.com/.. 2023. 10. 2.
SK에너지 구름공장 / 이권 SK에너지 구름공장 / 이권 서인천 봉수대로 SK에너지 구름공장에 불을 뽑는 공룡이 살고 있다 4억5천만 년 동안 숙성시킨 어둠을 끌고 나왔을 공룡 맨 먼저 화약 냄새 나는 이라크하늘과 사막의 모래바람을 보았을 것이다 소말리아 해적을 피해 오면서 수없이 코란경을 읽었을 공룡 굴뚝 꼭대기에서 불꽃쇼를 벌이고 있다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중생대의 뭉게구름 공룡의 살타는 냄새가 진동했다 지금은 서로가 서로를 잡아먹는 신인류 시대 수억만년후 나는 밤하늘 별빛과 함께 까만 석유가 되어 있을 것이다 * 이권 시집 「아버지의 마술」 애지. 2015. https://link.coupang.com/a/SBd98 그럼에도 불구하고:이권 시집 COUPANG www.coupang.com "이 포스팅은 쿠팡 파트너스 활동의 일환으.. 2023. 9. 26.
노숙 / 이권 노숙 / 이권 싸우는 것이 아니었다 세상과 대거리 하다 생에 과부하가 걸린 사내 동그랗게 몸을 말은 채 탑골 공원 느티나무 밑에서 낮잠을 자고 있다 해가 중천에 떠 있어도 깨어나지 않는 사내 분명 이 세상에서 도망갈 궁리를 하고 있는 모양이다 지구 밖으로 나가 다음 생에 지니고 올 패를 고르고 있는 것이다 느티나무가 사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그늘을 당겨 덮어 주고 있다 애당초 아무런 준비도 없이 이 세상에 온 것이 잘못이었다 *이권 시집 『아버지의 마술』 애지. 2015. 06. https://link.coupang.com/a/UyWuN 아버지의 마술:이권 시집 COUPANG www.coupang.com "이 포스팅은 쿠팡 파트너스 활동의 일환으로, 이에 따른 일정액의 수수료를 제공받습니다.“ 2023. 9. 16.
배다리 헌책방 골목 / 이권 배다리 헌책방 골목 / 이권 이 골목에 들어서는 순간 모두 반에 반값이 된다 조세희의 난쏘공이 문밖에 나와 지나가는 사람을 호객하고 있지만 별 소득이 없다 마광수의 가자 장미여관은 아예 건너편 여관골목으로 들어가 낮 손님을 받으며 희희낙락 성업 중이다 윤재림의 삼천리호 자전거도 바람이 빠진 채 한쪽 구석에서 이 골목을 떠날 궁리나 하고 있다 임화의 네거리 순이가 아직도 빨간 딱지를 붙인 채 납작 엎드려 있다 숨죽이고 가는귀먹은 바람벽이나 선동하고 있을 뿐이다 이 골목에 들어서는 사람은 이미 인생의 절반을 탕진해버리고 수십 번을 우려먹었을 소월의 진달래꽃이나 사러 오는 사람일 것이다 사랑하는 영희에게 1975년 가을날 찬우라고 써 놓은 낙서가 좋아 박재삼 시인의 千年의 바람을 이천오백 원에 샀다 몸 구석구.. 2023. 9. 15.
손님구함 / 이권 손님구함 / 이권 동인천역 지나서 솔빛 마을 가는 길 송현시장 근처 속옷 가게에 손님구함 팻말이 걸려있다 얼마나 찾아오는 사람이 없으면 저런 팻말을 내걸었을까 속옷 가게가 심심한 것이 분명하다 오늘은 주인 여자의 하나뿐인 손님이고 싶다 그녀와 온종일 수다를 떨다 손을 잡고 나서는 그녀의 애인이고 싶다 솔빛마을 어느 문간방에 사글세를 얻어 한 철을 살다가는 그녀의 손님이 되는 것 어쩌면 가슴속에 끌어들이고 싶은 사람이 있어 은근슬쩍 ‘손님구함’팻말을 눈속임으로 내걸었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권 시집 『아버지의 마술』 애지. 2015. 06. https://link.coupang.com/a/UyWuN 아버지의 마술:이권 시집 COUPANG www.coupang.com "이 포스팅은 쿠팡 파트너스 활동의 일.. 2023. 8. 23.
전생여행前生旅行 / 이권 오늘 소개할 시는 저의 첫 번째 시집 『아버지의 마술』에 실린 '전생여행'입니다. 전생여행前生旅行 / 이권 지난밤 꿈속, 이승을 이탈한 내가 전생의 나를 찾아가고 있었다 수수가 익어가는 어느 변방 전생에 나의 어미였을 여자들이 주름진 얼굴로 내 곁을 지나갔다 지붕 위에서 저고리를 흔들며 나를 부르는 전생의 아내 한 획 한 획 죄스러운 문장으로 쓰인 만장들이 나를 따르고 있었다 이승과 저승의 경계 가짜인 내가 부모미생전의 나에게 너는 또 누구냐고 묻고 있었다 * 이권 시집 『아버지의 마술』 도서출판애지. 2015. https://link.coupang.com/a/SBd98 그럼에도 불구하고:이권 시집 COUPANG www.coupang.com "이 포스팅은 쿠팡 파트너스 활동의 일환으로, 이에 따른 일정액.. 2023. 8. 11.
덤 / 이권 덤 / 이권 사람과 사람 사이 간격의 부재 사이로 떨어지는 빗소리를 듣는다 빗살무늬 문양이 그려진 너의 복숭아 뼈에서 복사꽃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나무와 나무 사이로 네가 한 마리 외로운 짐승으로 지나갈 때 한 됫박 얹어 주고 싶은 사랑 몰래 밀어 넣는다 비 내리는 오후가 고요하다 *이권 시집 『아버지의 마술』 2015. 06. 2023. 7. 26.
386 Computer / 이권 오늘 소개할 시는 저의 첫 번째 시집 『아버지의 마술』에 수록된 386 Computer 입니다. 386 Computer / 이권 386 메모리와 격정의 시대를 탑재한 주인님 F1을 누르시고 잠시 기다려 주시면 늘 버걱거리는 주인님 생에 대해 몇 가지 도움말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육십 평생 압축해 놓았던 주인님 생애를 알집을 통해 풀어드릴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문장을 몰래 복사해 주인님 문장에 붙여 넣기를 시도한 흔적이 주인님 주름진 얼굴에서 발견되는군요. 차마 발설할 수 없었던 주인님의 치욕스런 문장은 여러 경로에 암호를 걸어 놓으신 채 숨겨 놓으셨고요. 수기 문서로 생을 계산하던 시대는 이미 박물관에 들어가 있지요. 엑셀의 함수에 주인님 사주팔자를 입력해보세요. 지금 사귀고 있는 늙은 애인과의 .. 2023. 7. 17.
짝퉁 / 이권 짝퉁 / 이권 생면부지의 사내한테 전화가 왔다 가짜인 네가 진짜인 나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묻고 있다 나를 사칭하고 다니는 또 다른 나 이미 털릴 대로 털려 버린 13자리의 주민등록번호로는 더 이상 나를 증명할 수가 없다 경찰서 유치장에서 또 다른 내가 나를 복제한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다는 연락이 왔다 매번 내가 나를 로그인 할 때마다 비밀번호가 틀린다는 메시지가 뜬다 누군가 또 다른 비밀번호로 나를 바꿔 놓은 것이다 장평면 호적계장의 오기로 생산년도가 잘못 입력된 나의 바코드 태어난 시(時)가 자시(子時)인지 인시(卯時)인지도 불분명하다 거울 속의 내가 거울 밖의 나에게 성씨와 본관과 주민번호를 묻고 있다 너는 또 누구냐고 *이권시집[아버지의 마술]애지. 2015. 06. https://link.c.. 2023. 7. 12.
저녁 무렵 / 이권 저녁 무렵 / 이권 모내기 전 다랑논에 논물이 괴어 있다 푸른 하늘과 뭉게구름이 내려와 있다 집 앞 감나무에 어둑어둑 저녁이 찾아왔다 물꼬를 보러 갔던 아버지가 대문을 들어서자 집안까지 어둠이 따라 들어왔다 어둠 속에서만 꽃을 피울 수 있는 가로등이 골목길에 환하게 내걸렸다 모두가 저녁이 되는 시간 이미 어둠이 된 네가 더 컴컴해진 나를 들여다보고 있다 하늘에 개밥바라기별 된 두리*가 떠 있고 울 밖, 개구리 울음소리가 지천이다 * 12년 키우다 무지개다리 건너간 강아지 이름. 이권 시집 『아버지의 마술』 애지. 2016.06. https://link.coupang.com/a/SBd98 그럼에도 불구하고:이권 시집 COUPANG www.coupang.com "이 포스팅은 쿠팡 파트너스 활동의 일환으로, .. 2023. 7. 3.
공중 戰 공중 戰 / 이권 철물점으로 호미 사러 가는 길이었다 돌팍재 삼거리에 이르렀을 때 하늘이 갑자기소란해졌다 까치 두 마리가 까마귀 한 마리를 공격하고 있었다 걸프전 때 다국적군 비행기에 격추 당하는 이라크 전투기 같기도 한 까마귀 일방적으로 협공을 당하고 있었다 까마귀 한 마리 숨겨 줄 수 없는 속수무책의 하늘 까마귀의 검은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하늘에 점점이 뿌려지는 붉은 피 복사꽃 피는 환한 봄날 이었다 *이권 시집[아버지의 마술]애지. 2015. 06. 2022. 11. 7.
아버지의 마술 책표지 2022. 1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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