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이권 첫 번째 시집 『아버지의 마술』60 시(詩) 짝퉁 / 이권 짝퉁 / 이권 생면부지의 사내한테 전화가 왔다 가짜인 네가 진짜인 나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묻고 있다 나를 사칭하고 있는 또 다른 나 이미 털릴 대로 털려 버린 13자리의 주민등록번호로는 더 이상 나를 인증할 수가 없다 무수히 복제된 내가 경찰서 유치장에서 나를 복제한 공문서 위조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다는 연락이 왔다 매번 내가 나를 로그인할 때마다 비밀번호가 틀린다는 메시지가 뜬다 누군가 또 다른 비밀번호로 나를 바꿔 놓은 것이 분명하다 장평면 호적계장의 오기로 생산 연도가 잘못 입력된 나의 바코드 태어난 時(시)가 子時(자시)인지 卯時(묘시)인지도 불분명하다 거울 속의 내가 거울 밖의 나에게 주민등록번호와 본관을 묻고 있다 너는 또 누구냐고…, *이권 시집 『아버지의 마술』 애지. 2015. 06.. 2023. 12. 20. 시(詩) 사랑의 패턴 사랑의 패턴 / 이권 연애도 로또복권처럼 대박을 터트릴 수 있다는 한탕주의가 만연하고 있는 시대. 사랑은 아름다운 것이라고 포교하고 다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녀의 말씀은 평생 수지 독송하여야 할 경전이었고 108배를 올리며 간절히 믿고 받들어야 할 종교가 되었습니다. 그녀는 내게 은혜롭게 다가오는 사랑교의 교주였던 것입니다. 사랑이 사이비 교단의 교리처럼 한번 빠지면 헤어나지 못하는 위험한 종교라는 것도 그때 알았습니다. 사랑은 믿음이 충만할수록 배신당할 확률이 높은 게임이죠. 사랑에는 계절마다 색깔을 바꾸는 유행의 패턴이 있어 철 지난 밀당의 기술로는 점점 진화해 가는 사랑의 방식을 따라갈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사랑은 엄마가 읽는 금강경처럼 그렇게 난해하지도 깐깐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마음 가는 .. 2023. 12. 14. 포교당 가는 길 포교당 가는 길 관음사 포교당 가는 길. 골목 초입에 노란 리라유치원이 재잘재잘 앉아 있다. 관절염에 걸린 해피가 밀린 밥값이나 하려고 허드레 울음으로 불심검문을 하는 곳. 사시사철 봄을 팔아먹고 사는 꽃집 이층엔 하늘로 커피향을 말아 올리는 은하수다방이 있다. 닭똥집과 쭈꾸미를 파는 술에 쩐 포장마차도 있다. 삼거리 희망슈퍼 앞 순댓국집과 이발소가 있고 그 옆으로 초승달 같은 낫을 파는 철물점이 있다. 발소리만 들어도 뉘 집 딸내미의 바람 난 발걸음인지 금방 알아채 버리는 골목. 눈치 9단의 사람과 눈치 10단의 귀신들이 사는 안골마을 지나면, 하늘에 십자가를 내건 조그만 예배당이 앉아 있다. 주정뱅이들이 도깨비들에게 들배지기를 당하는 당산나무 아래쯤에 이르면 골목길은 제가 온 길을 지우고 스스로 산이.. 2023. 12. 10. 세상의 모든 여자는 내 엄마다 세상의 모든 여자는 내 엄마다 / 이권 꽃피는 춘삼월 꽃구경 가다 벚꽃나무 아래 치마 걷어 올리고 오줌 누고 있는 저 여자 수줍음 많던 내 엄마다 장곡사 대웅전 쌀 한 됫박 올려놓고 아침 내내 무당 절 올리며 복을 빌고 있는 저 여자 까막눈이 내 엄마다 이른 아침 게걸음으로 하늘공원 질질 끌고 가며 걸음마 연습하는 저 여자 입이 반쯤 돌아간 중풍 걸린 내 엄마다 여름 땡볕 아래 혼잣말 주고받으며 고추밭을 매고 있는 저 여자 아무리 일을 하여도 가난이 떠나지 않던 농투성이 내 엄마다 모래내 시장 난전에서 얼갈이배추 서너 단 풀어 놓고 손톱 밑이 까맣도록 고구마 줄기를 벗기고 있는 저 여자 장돌뱅이 내 엄마다 저물녘 그만 놀고 들어와 밥 먹으라 부르는 저 여자 가슴이 따스했던 내 엄마다 전생이든 금생이든 다.. 2023. 12. 5. 조약돌 / 이권 오늘 소개할 시는 저의 첫 번째 시집 「아버지의 마술」에 실린 '조약돌' 입니다. 조약돌 / 이권 조약돌 하나 책상위에 앉아 있다 올 봄 속초 바닷가서 주어온 돌 설악산 흔들바위에서 굴러 내려온 돌인지 아니면 목숨 걸고 휴전선을 넘어온 삼팔따라지인지 동해바다 먼 심해에서 물고기 등살에 밀려나온 돌인지 돌의 체온이 변할 때마다 어미의 심장과 연결되었던 돌의 심혈관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파도소리로 제 몸의 날선 살기를 다듬었을 조약돌 물고기들이 지느러미를 펴고 다가와 돌의 상처를 보듬어 주었을 것이다 어느 바위의 사리일까 먼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조약돌 그가 끌고온 돌의 연대기가 궁금하다 *이권 시집 『아버지의 마술』 애지. 2015. 06. https://link.coupang.com/a/UyWuN 아버지의.. 2023. 11. 22. 슬픔은 늘 햇빛 쨍한 날 일어났다 / 이권 슬픔은 늘 햇빛 쨍한 날 일어났다 / 이권 새벽에 선생님께 손바닥 맞는 꿈을 꾸다 깨어났다 고개를 숙인 채 땅만 바라보며 가지런히 두 손을 모으고 있었다 무릎 꿇고 두 손을 든 채 벌서는 날도 많았다 국민학교 때 육성회비 제날짜에 내지 않았다고 매를 맞은 날도 무지개가 뜨고 꽃은 환하게 피어났다 내 손에 늘 푸른 줄이 그어지고 낯선 짐승과 흘레질하는 흉흉한 꿈을 꾸었다 내가 내 손에 수갑을 채우는 날이 많아졌다 타인의 시선이 머물다 간 뒤통수 수없이 처형된 내 슬픈 영혼의 血혈 자리 슬픔은 그렇게 늘 햇빛 쨍한 날 일어났다 *이권 시집[아버지의 마술] 애지. 2015. 06. https://link.coupang.com/a/UyWuN 아버지의 마술:이권 시집 COUPANG www.coupang.com ".. 2023. 11. 19. 어둠의 복제 / 이권 어둠의 복제 / 이권 한 세계가 닫히고 한 세계가 열리는 저녁 골목길은 점점 깊어지고 어둠이 어제처럼 복제되고 있다 밤만 되면 어둠은 불온한 꿈을 키우며 무럭무럭 자라 났다 어둠은 항상 내 안에서 흘러 나와 그녀가 있는 데까지 번져 갔다 그녀를 흠뻑 적신 후에 다시 내 안을 들여다보고 있다 그녀는 우주를 이탈한 유성처럼 잠시 반짝이다 사라졌다 오전 한 시에서 세 시 사이의 어둠은 모두 불량한 음질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귀신들의 발걸음 소리이거나 발정 난 고양이의 가능거리는 울음소리이다 밤은 내전을 끝낸 도시같이 모든 길이 끊겨 있어 나는 소리 나는 곳의 바깥쪽에서 모든 것을 방관하는 구경꾼 이 된다 몇 겹의 어둠을 두른 그녀가 깊어질 대로 깊어지고 있다 이제 그녀는 오랜 동안 숙성의 시간을 가질 것이고 .. 2023. 11. 14. 어떤 안부 / 이권 어떤 안부 / 이권 함박눈 내리는 부평역 앞 시외버스 정류장 강화 가는 버스 기다리는데 아까부터 위 아래로 찬찬히 나를 읽고 있는 여자 내 몸에서 수상한 곳이라도 발견한 듯 고개를 갸우뚱 거리고 있다 후줄근한 입성이며 까칠하게 돋아난 수염 아니면 어젯밤 내 아랫도리의 비밀을 눈치 챘을까 그녀의 눈은 내 몸 어디쯤까지 밀고 들어 왔는지 마침 김포 행 버스가 들어왔고 그녀는 다시 한 번 나를 훑어보고는 버스에 올랐다 실룩거리는 엉덩이가 안녕이라고 말을 던진다 어디서 만났을까 강화 행 버스는 좀처럼 오지 않고 함박눈 쌓이는 내내 그녀의 안부가 궁금했다 *이권 시집[아버지의 마술]애지. 2015. 06. https://link.coupang.com/a/UyWuN 아버지의 마술:이권 시집 COUPANG www.c.. 2023. 11. 2. 아름다운 멸망 / 이권 아름다운 멸망 / 이권 복사꽃 환한 봄날 나는 죽었다 아내는 고생만 하다 이제 살만 하니 갔다고 살아서도 인정 없는 사람이더니 죽을 때도 인정 없이 죽었다고 내 죽음에 밑줄을 치며 울고 있다 친구들은 부조 돈 오만 원 내놓으면서 언제 갚을 거냐고 자기들이 밑진 장사라며 킬킬거리며 고스톱을 치고 있다 주치의는 세상을 분탕질해놓고 청소도 안 해 놓고 갔다며 그래도 세상이 조금은 깨끗해진 것 같다고 축 사망이라고 적어 놓고 있다 국화꽃으로 나를 환하게 수식하고 있는 영정 정성스레 만수향 사르고 술 한 잔 따르며 내가 나에게 큰절을 올렸다 그 동안 고생했다고 내 죽음을 쓰다듬으며 나의 멸망을 축하 해주었다 *이권 시집 「아버지의 마술」 애지. 2015. 06. https://link.coupang.com/a/U.. 2023. 10. 27. 복숭아 나무 / 이권 복숭아 나무 / 이권 서당골 가는 밭모퉁이에 복숭아나무 한 그루 서있다 나비의 하얀 발자국이 남아 있던 나무 신과 접신하고 싶었던 아버지가 심어 놓은 나무이다 복사꽃 지는 밤 복숭아나무에서 너의 울음소리가 하얗게 들려왔다 울 밖을 떠도는 서자 같이 서러운 나무 복숭아나무의 푸른 가지를 꺽어들고 너와 나의 신점을 친다 점점 떨려 오는 손 복숭아나무의 신장대가 가리키는 곳 너와 나의 사랑이 동티났던 곳이다 * 이권 시집 『아버지의 마술』 도서출판 애지. 2015. https://link.coupang.com/a/UyWuN 아버지의 마술:이권 시집 COUPANG www.coupang.com "이 포스팅은 쿠팡 파트너스 활동의 일환으로, 이에 따른 일정액의 수수료를 제공받습니다.“ 2023. 10. 20. 바람벽에 뻐꾸기 울면 / 이권 바람벽에 뻐꾸기 울면 / 이권 한밤 바람벽에서 뻐꾸기 울음소리가 들리고 있어요 온 집안이 뻐꾸기 울음소리에 젖고 있지요 어둠을 쪼아 먹으며 검게 자라나고 있는 뻐꾸기 날개를 펴고 온 집안을 날아다니고 있어요 방안은 뻐꾸기 울음소리의 허 묘 아무리 파보아도 새의 부리는 보이지 않아요 바람벽을 기어오르는 초침소리만 내 귀를 잘게 부수며 늙어가고 있지요 오랜 기간 불임의 날을 견딘 아내의 자궁에서 말랑말랑한 새끼 뻐꾸기 울음소리가 만져지고 있어요 산란기 맞은 뻐꾸기가 아내의 몸에 몰래 뻐꾸기 알을 부화시키고 있는지도 모르는 일이지요 가짜인 네가 진짜인 나를 처형하는 모반의 계절사방이 온통 뻐꾸기 울음소리로 넘쳐 나고 있어요 *이권 시집[아버지의 마술]애지. 2015. 06. https://link.coupan.. 2023. 10. 14. 만산홍엽 / 이권 만산홍엽滿山紅葉 / 이권 불은 맨 먼저 그녀에게서 발화되었다 아파트 화단 배롱나무 잎사귀를 거쳐 단비한의원 돌담을 기어오르던 담쟁이넝쿨에 번져갔다 용궁사 은행나무를 노랗게 불태운 가을은 백운산 단풍나무와 떡갈나무에서 절정을 이루며 활활 타올랐다 온몸에 불이 붙어 더러는 얼굴을 데인 여자도 있고 가슴을 덴 사내도 있다 제 몸을 불사르는 나무들 붉은 깃발 내걸고 가을이 저를 버리는 중이다 가을 산을 걸어 나오는 사람들 모두가 불콰한 단풍나무가 되었다 *이권 시집[아버지의 마술]애지. 2015. 06. https://link.coupang.com/a/SBd98 그럼에도 불구하고:이권 시집 COUPANG www.coupang.com "이 포스팅은 쿠팡 파트너스 활동의 일환으로, 이에 따른 일정액의 수수료를 제공.. 2023. 10. 7. 이전 1 2 3 4 5 다음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