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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에게 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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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시 산책95

신록 / 서정주 오늘 소개할 시는 푸른 오월에 잘 어울리는 서정주 시인의 ‘신록’입니다. ‘신록’은 1947년 문화 4월호에 발표된 시입니다. 온 세상이 신록인 계절 남몰래 고이 간직하고 싶은 사랑을 가졌으면 합니다. 문학적인 명성과는 달리 일제강점기 친일행각과 전두환 찬양 시를 쓰는 등 권력과 시류에 편승한 것이 여전히 논란거리로 남아 있는 서정주 시인의 ‘신록’입니다.  신록 / 서정주  어이할거나아, 나는 사랑을 가졌어라남몰래 혼자서 사랑을 가졌어라 천지에 이미 꽃잎이 지고새로운 녹음이 다시 돋아나또 한 번 날 에워싸는데 못 견디게 서러운 몸짓을 하며붉은 꽃잎은 떨어져 내려펄펄펄 펄펄펄 떨어져 내려 신라 가시내의 숨결과 같은신라 가시내의 머리털 같은풀밭에 바람 속에 떨어져내려 올해도 내 앞에 흩날리는데부르르 떨며 .. 2024. 5. 14.
빈 집 / 기형도 오늘 소개할 시는 기형도의 ‘빈 집’입니다. 젊은 나이에 요절한 시인 기형도. 198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안개'가 당선되어 등단하게 됩니다. 1989년 3월 7일 새벽 종로의 파고다 극장에서 심야 영화를 관람하다가 뇌졸중으로 사망하게 됩니다. 그의 시에는 산업화 과정 속에 겪는 인간 상실의 쓸쓸한 번뇌와 제 안에 저를 가두고 마는 시대의 절망이 담겨 있습니다.  빈 집 / 기형도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 출처 기형도 시집 『입속의 검은 혀』 1.. 2024. 5. 5.
13평의 두 크기 오늘 소개할 시는 유안진 시인의 ‘13평의 두 크기’입니다. 시 속의 화자, 13평 임대아파트에 살다가 쉰셋 나이에 13평 아파트를 장만한 지인 집에 하이타이를 사 들고 집들이를 간 모양입니다. 어불성설이지만 집 자랑하는 화자의 모습에서 지난했던 시절의 아픔이 느껴집니다. 온 국토가 투기 대상이 되어버린 요즈음 곰곰이 생각해 볼 일입니다.  13평의 두 크기 / 유안진   너무 늦은 축하가 미안해서, 양초와 하이타이 등을 잔뜩 사들고 인사를 갔었지 13평 임대아파트에서 13평 아파트로 이사간 집으로  쉰 셋 나이에 처음 제 집에 살아본 안주인은, 종아리까지 걷어 보이며 불평불만이었지 석달이나 지났어도 부은 것이 안 풀린다고, 괜히 넓은 집 사서 다리만 아프다고, 청소하기도 힘들다고, 평수는 같아도 크기는.. 2024. 4. 25.
수묵水墨 정원 9 /장석남 오늘 소개할 시는 장성남 시인의 ‘수묵水墨 정원 9’입니다. ‘번짐’이라는 부제가 붙어있습니다. 번짐. 꽃 한 송이 번져 봄날을 밝히듯, 아이의 환한 웃음이 엄마에게 번져 꽃을 피우듯, 습자지에 먹물 번지듯 내가 당신에게 번지고 당신이 내게 번져 세상이 좀 더 부드러워졌으면 좋겠습니다. 수묵水墨 정원 9 /장석남 -번짐 번짐, 목련꽃은 번져 사라지고 여름이 되고 너는 내게로 번져 어느덧 내가 되고 나는 다시 네게로 번진다 번짐, 번져야 살지 꽃은 번져 열매가 되고 여름은 번져 가을이 된다 번짐, 음악은 번져 그림이 되고 삶은 번져 죽음이 된다 죽음은 그러므로 번져서 이 삶을 다 환히 밝힌다 또 한번-저녁은 번져 밤이 된다 번짐, 번져야 사랑이지 산기슭의 오두막 한채 번져서 봄 나비 한마리 날아온다 2024. 4. 18.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 황지우 오늘 소개할 시는 황지우 시인의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입니다. 독제정권 시절 극장에서 본 영화가 상영되기 전 애국가가 울리며 모두 일어나 국기에 대하여 경례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화면에는 새들이 날아오르고 동해에 아침 해가 떠오르고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존하세로 애국가가 끝이 나야 자리에 앉았습니다. 새들도 세상을 뜨는데 자유가 없는 우리는 이 답답한 세상을 뜨지 못하고 있다고 시대의 암울함을 노래합니다. 자유에 대한 의지 그리고 좌절을 노래한 황지우 시인의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입니다.​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 황지우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 일제히 일어나 애국가를 경청한다. 삼천리 화려 강산의 을숙도에서 일정한 군(群)을 이루며 갈대숲을 이륙하는 흰 새떼들이 자기들끼리 끼룩거.. 2024. 4. 15.
散文詩(산문시) 1 / 신동엽 오늘 소개할 시는 ‘껍데기는 가라’로 유명한 신동엽 시인의 ‘散文詩(산문시) 1’이라는 시입니다. 이 시에 나오는 화자 석양 대통령은 실재했던 인물로 스웨덴의 대통령 올로프 팔메입니다. 석양 무렵 퇴근길에 딸아이 손을 잡고 경호원도 없이 칫솔 사러 시장에 나오던 대통령, 결국 암살자의 총탄에 맞아 세상을 떠납니다. 우리에게도 봉하마을에서 자전거 짐받이에 손녀를 태우고 들길을 달리던 대통령 아저씨가 있었지요. 자전거 뒤꽁무니에 막걸리를 싣고 삼십 리 시인의 집을 찾아가는 석양 대통령이 우리에게는 언제나 찾아오려는지요. 散文詩(산문시) 1 / 신동엽 스칸디나비아라든가 뭐라구 하는 고장에서는 아름다운 석양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업을 가진 아저씨가 꽃 리본 단 딸아이의 손 이끌고 백화점 거리 칫솔 사러 나오신단다.. 2024. 4. 11.
아이가 아빠를 키운다 / 손병걸 오늘 소개할 시는 손병걸 시인의 ‘아이가 아빠를 키운다’입니다. 군 특수부대 출신인 손병걸 시인은 후천성 시각장애자입니다. 시 속에 나오는 화자 초등학교 3학년 아이가 이제는 커서 25살의 숙녀가 되었습니다. 나는 열 개의 눈동자를 가졌다는 손병걸 시인. 조만간 만나서 막걸리 한잔하여야겠습니다. 아이가 아빠를 키운다 / 손병걸 아빠 식사하세요 밥때만 되면 아이의 목소리가 들린다 자식이라고는 단 하나 고작, 초등학교 3학년 생일이 빨라서 3학년이지 이제 아홉 살짜리다 밥상에 앉으면 이건 김치, 빨개요 요건 된장찌개, 뜨거워요 두 눈이 안 보이는 아빠를 위해 제 입에 밥알이 어찌 되든지 말든지 오른쪽에 뭐 왼쪽에 뭐 아이의 입은 바쁘다 요란한 밥상이 물러나면 커피는 두 스픈 설탕은 한 스픈 반 크림은 우유가.. 2024. 3. 31.
헤어지는 연습을 하며 / 조병화 오늘 소개할 시는 조병화 시인의 ‘헤어지는 연습을 하며’입니다. 이 시는 어제 제가 동묘 구제시장 헌책방에서 구입한 조병화 시인의 시집 「숨어서 우는 노래」에 수록된 시입니다. 산다는 것이 날마다 만나고 헤어지는 연속입니다. 인연에 의해 만났다고 인연이 다하면 헤어지는 게 삶입니다. 아름다운 풍경과 정다운 사람들, 떠날 것은 떠나보내고 헤어지는 연습을 하며 살자고 합니다. 헤어지는 연습을 하며 / 조병화 헤어지는 연습을 하며 사세 떠나는 연습을 하며 사세 아름다운 얼굴, 아름다운 눈 아름다운 입술, 아름다운 목 아름다운 손목 서로 다하지 못하고 시간이 되려니 인생이 그러하거니와 세상에 와서 알아야 할 일은 ‘떠나는 일’일세 실로 스스로의 쓸쓸한 투쟁이었으며 스스로의 쓸쓸한 노래였으나 작별을 하는 절차를 .. 2024. 3. 25.
치자꽃 설화 / 박규리 오늘 소개할 시는 박규리 시인의 ‘치자꽃 설화’입니다. 산중에 출가한 스님의 옛 연인이 찾아온 모양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돌려보내고 설운 눈물 흘리는 스님을 시속의 화자가 종탑 뒤에 숨어서 보고야 말았습니다. 여인은 치자꽃 아래 오래 서 있다 쑥꾹새 울음소리를 들으며 가 산길을 내려가고 울부짖듯 기도하는 스님의 목탁 소리만 홀로 바닥을 뒹굽니다, 시속의 화자는 괜시리 자기가 버림받은 여자가 되어 ‘사랑하는 일이야말로 참으로 어려운 것이라고’ 합니다. 이 시가 수록된 시집 표지 제목이 ‘이 환장한 봄날에’입니다. 이 환장할 봄날에 당신의 사랑은 안녕하신지요. 치자꽃 설화 / 박규리 사랑하는 사람을 달래 보내고 돌아서 돌계단을 오르는 스님 눈가에 설운 눈물 방울 쓸쓸히 피는 것을 종탑 뒤에 몰래 숨어 보고.. 2024. 3. 19.
섬진강 1 / 김용택 오늘 소개할 시는 섬진강 시인으로 알려진 김용택 시인의 ‘섬진강 1’입니다. 지도에도 없는 식물도감에도 없는 꽃들이 피어나는 강마을. 어느 애비 없는 후레자식들이 퍼낸다고 마를 강물이겠냐며 민중들의 강인하고 끈질긴 생명력을 보여줍니다. 토끼풀 자운영꽃을 피우며 오늘도 도도히 흐르고 있을 전라도 실핏줄 같은 섬진강. 김용택 시인이 나고 자라고 선생이 되어 강길을 걷던 진매마을에 가보고 싶습니다. 섬진강 1 / 김용택 가문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퍼 가도 퍼 가도 전라도 실핏줄 같은 개울물들이 끊기지 않고 모여 흐르며 해 저물면 저무는 강변에 쌀밥 같은 토끼풀 꽃, 숯불 같은 자운영 꽃 머리에 이어 주며 지도에도 없는 동네 강변 식물도감에 없는 풀에 어둠을 끌어다 죽이며 그을린 이마 훤하게 꽃등도 달아 준다.. 2024. 3. 13.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 이상화 오늘 소개할 시는 이상화 시인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입니다. 이상화 시인은 1901년 대구에서 출생하여 1943년에 작고한 일제 강점기 시대 항일 저항 운동의 시인입니다. 1926년 6월 「개벽」이라는 잡지에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발표하였습니다. 식민지 시대 조국의 광복을 기리는 이 시는 뛰어난 항일 시로, 독재 권력과 맞서던 이들에게 널리 불리우던 시입니다. 아직도 역사를 망각한 친일파들이 설치는 세상. 우리가 기다리는 진전한 봄(해방)은 오지 않았나 봅니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 이상화 지금은 남의 땅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2024. 3. 7.
앵두 / 고영민 오늘 소개할 시는 고영민 시인의 ‘앵두’입니다. 둥글고 빨간 화이바를 앵두라고 표현한 시인. 가랑이를 오므리고 빨간 화이바를 쓰고 스쿠터를 타고 온 그녀는 누구일까요. 껌을 씹으며 커피 배달 온 붉은 루주를 칠한 정다방 미스김일까요, 아니면 솜털 보송한 사촌 여동생이 스쿠터를 타고 오빠 집에 놀러 온 것일까요. 깜찍하고 당돌한 이미지가 그려지는 한 폭의 수채화 같은 풍경, 그녀의 정체가 궁금해집니다. 앵두 / 고영민 그녀가 스쿠터를 타고 왔네 빨간 화이버를 쓰고 왔네 그녀의 스쿠터 소리는 부릉부릉 조르는 것 같고, 투정을 부리는 것 같고 흙 먼지를 일구는 저 길을 쒱, 하고 가로질러왔네 가랑이를 오므리고 발판에 단화를 신은 두 발을 가지런히 올려놓고 허리를 곧추세우고, 기린의 귀처럼 붙어 있는 백미러로 .. 2024. 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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