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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소개할 시는 칠레의 민중 시인 파블로 네루다의 시 ‘폭풍우를 기리는 노래’입니다. 한 여름밤 검푸른 폭풍우가 하늘과 땅을 흔들며, 천둥과 번개를 퍼부으며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맹렬한 폭풍우와 공포의 시간 속에서 우리는 겸손해지고 지난 죄를 반성하게 됩니다. 비는 곧 애인처럼 순해지고 온갖 것을 키워 내는 원동력이 됩니다. 폭풍우가 지나간 비 갠 하늘을 바라보며 앞으로 나갈 희망과과 용기를 얻는 것이지요.
폭풍우를 기리는 노래 / 파블로 네루다
어젯밤
그녀는
왔다,
검푸르게,
밤빛 감청,
포도주 빛으로:
물의 머리카락,
차가운 불의 눈을
가진
폭풍우―
어젯밤 그녀는
지상에서 자고 싶었다.
그녀의 맹렬한 행성에서,
하늘에 있는 그녀의 동굴에서
갓 풀려나
느닷없이 왔다;
그녀는 자고 싶었고
잠자리를 만들고 싶었다:
정글과 고속도로를 휩쓸고,
산들을 휩쓸고,
바다의 돌들을 씻고,
그러고는
자기 침대를 만들려고
마치 그것들이 깃털인 양
소나무 숲을 휩쓸었다.
그녀는 그녀의 화통(火筒)에서
번개를 흔들어 떨어뜨렸고,
커다란 통들인 양
우레를 떨어뜨렸다.
일순
침묵에 싸였다:
나뭇잎 하나
나는(飛) 바이올린처럼
공중에서 활주했다―
그러고는
그게 땅에 닿기 전에
너는 그걸
손에 쥐었다, 엄청난 폭풍이여,
모든 바람이
호른을 불어대게 했고,
밤은 온통
그 말들을 달리게 했으며,
얼음은 모두 윙윙거리고,
거친
나무들은
죄수들처럼
비참하게 시달렸다,
땅은
신음하고, 여자는
출산하고,
한 줄기 강풍으로 너는
풀이나
별들의 산들거림을
잠재우며,
얼얼한 침묵을
손수건처럼
찢어발긴다―
세계는
소리와 맹위와 불로 가득 차고,
번개 칠 때는
네 번쩍이는 이마에서
머리카락 떨어지듯 하고,
네 전사의 벨트에서
칼이 떨어지는 듯하며
세상이 끝나는구나 하고
우리가 생각할 때쯤,
그때쯤,
비,
비,
오직
비,
땅 전체, 온
하늘이
잠든다,
밤은
사람의 잠 위에
피 흘리며 무너지고,
오로지 비,
시간과 하늘의
물뿐:
꺾인 가지,
빈 둥지
외에는 아무것도
떨어지지 않았다.
네 음악적인
손가락들로,
네 지독한 포효로,
네 밤 화산의
불로,
너는 나뭇잎 하나 들어 올리며
놀고,
강들에 힘을 주고,
사람 되게
사람을
가르치고,
약한 사람에게 겁먹게 하고,
여린 사람을 울게 하며,
창문들을
덜그럭거리게 한다 ―
그러나
네가 우리를 파괴하려고 했을
때,
맹위가 단도처럼
하늘에서 떨어졌을 때,
불빛과
그림자가 모두 떨고
소나무들이 밤바람 끝에서
울부짖으며 스스로를
삼킬 때,
너, 자상한 폭풍우여,
내 약혼자여,
그렇게 거칠었으면서도 너는
우리한테 잘못을 하지 않았다:
그렇질 않고
너의 별과
비로 돌아갔다.
풋풋한 비,
꿈과 씨로
가득 찬 비,
추수의
어머니인
비,
세상을 씻는 비,
씻어 잘 말리고,
그걸 새롭게 하는,
우리들 사람과
씨앗을 위한 비,
죽은 사람을
잊게 하고
내일의
빵을
위한
비―
비만을
너는 남겼다,
물과 음악,
그래서,
나는 너를 사랑한다
폭풍우여,
나를 생각해 주고,
다시 와서,
나를 깨워주며,
비추어주고,
너의 길을 보여주어
선택된 목소리
사람의 폭풍우 같은 목소리가
너와 어울려 너의 노래를 부르게 해다오.
*출처 : 네루다 시선. 정현종 옮김. 민음사(20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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