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소개할 시는 아직도 많은 사람에게 회자되고 있는 문정희 시인의 ‘치마’와 임보 시인의 ‘팬티’입니다. 문정희 시인의 ‘치마’에 임보 시인이 화답 형식으로 쓴 시가 ‘팬티’입니다. 인간의 원초적이고 근원적인 심오하고 오묘한 남녀 관계를 치마와 팬티라는 상징어를 통해 서술하고 있습니다. 자칫하면 외설로 빠질 수 있는 내용을 문학적 예술로 승화시킨 문정희 시인의 ‘치마’와 임보 시인의 ‘팬티’입니다.
치마 / 문정희
벌써 남자들은 그곳에
심상치 않은 것이 있음을 안다
치마 속에 확실히 무언가 있기는 있다
가만두면 사라지는 달을 감추고
뜨겁게 불어오는 회오리 같은 것
대리석 두 기둥으로 받쳐 든 신전에
어쩌면 신이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은밀한 곳에서 일어나는
흥망의 비밀이 궁금하여
남자들은 평생 신전의 주위를 맴도는 관광객이다
굳이 아니라면 신의 후손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들은 자꾸 족보를 확인하고
후계자를 만들려고 애를 쓴다
치마 속에 확실히 무언가 있다
여자들이 감춘 바다가 있을지도 모른다
참혹하게 아름다운 갯벌이 있고
꿈꾸는 조개들이 살고 있는 바다
한 번 들어가면 영원히 죽는
허무한 동굴?
놀라운 것은
그 힘은 벗었을 때 더욱 눈부시다는 것이다
...............................................................................
팬티 / 임보
- 문정희의「치마」를 읽다가
그렇구나.
여자들의 치마 속에 감춰진
대리석 기둥의 그 은밀한 신전.
남자들은 황홀한 밀교의 광신들처럼
그 주변을 맴돌며 한평생 참배의 기회를 엿본다
여자들이 가꾸는 풍요한 갯벌의 궁전,
그 남성 금지구역에 함부로 들어갔다가 붙들리면
옷이 다 벗겨진 채 무릎이 꿇려
천 번의 경배를 해야만 한다
그러나, 그런 곤욕이 무슨 소용이리
때가 되면 목숨을 걸고 모천으로 기어오르는 연어들처럼
남자들도 그들이 태어났던 모천의 성지를 찾아
때가 되면 밤마다 깃발을 세우고 순교를 꿈꾼다
그러나, 여자들이여. 상상해 보라
참배객이 끊긴.
닫힌 신전의 문은 얼마나 적막한가!
그 깊고도 오묘한 문을 여는
신비의 열쇠를 남자들이 지녔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보라.
그 소중한 열쇠를 혹 잃어버릴까 봐
단단히 감싸고 있는 저 탱탱한
남자들의 팬티를!
* 시인 약력
문정희 시인은 1947년에 태어났으며 1969년에 월간문학 신인상에 당선되었다. 시집으로 『문정희 시집』 『새떼』 『찔레』 『하늘보다 먼 곳에 매인 그네』 등이 있다.
임보(본명 강홍기) 시인은 1940년에 태어났으며 1962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하였다. 저서로 『현대시 운율 구조론』 『엄살의 시학』 『미지의 한 젊은 시인에게』 등이 있다.
https://link.coupang.com/a/SBd98
"이 포스팅은 쿠팡 파트너스 활동의 일환으로, 이에 따른 일정액의 수수료를 제공받습니다.“
'명시 산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수라修羅 / 백석 (157) | 2023.08.29 |
---|---|
이백(李白) 시 자견(自遣)과 산중문답(山中問答) (134) | 2023.08.25 |
그럼에도 불구하고 (80) | 2023.08.19 |
병든 서울 / 오장환 (106) | 2023.08.15 |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 킴벌리 커버거 (81) | 2023.08.09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