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소개할 시는 저의 첫 번째 시집 『아버지의 마술』에 수록된 아내의 사계입니다.
아내의 사계四季 / 이권
이른 아침 라디오에서 비발디의 사계가 흘러나오고 있다. 잠에서 깨어난 아내, 내게 손을 뻗쳐 오고 있다. 느슨하게 풀리는 아내의 몸을 고르고 현을 맞추는 것은 나의 오래된 습관, 아내의 몸에는 언제든지 계절의 흐름을 연주할 수 있는 바이올린이 숨겨져 있다. 아내를 연주하기 위해서는 부드럽고 섬세하게 활을 켜야 한다.
아직은 서로가 서로를 탐색 중 아내의 치골에 감겨있던 바이올린 3번 현을 누르자 동그랗게 몸을 말아 올리며 팽팽히 감겨오는 아내. 살랑살랑 바람이 일고 아내의 몸속에서 물새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비발디의 사계가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자 아내의 몸에 먹장구름이 둥둥 떠다니고 소낙비 내리는 소리가 요란했다.
아내에게 길고 긴 우기가 찾아온 것이다. 곧이어 내 몸에도 홍수가 나기 시작했고 이박삼일 동안 내 몸은 흠뻑 젖어 있었다. 아내를 연주할 때 여름에서 가을로 들어서는 간절기를 조심하여야 한다. 아내의 몸은 변덕스러운 날씨와 같아 하루에도 몇 번씩 구름이 끼고 높새바람이 불어올 때가 있다.
오늘 아내는 저기압 가장자리에 들어 있고 구름이 조금 껴 있다. 이쯤에서 나의 화려한 연주가 필요한 때. 아내의 낮은음자리가 있는 배꼽을 누르자, 치맛자락에서 구구거리는 산비둘기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비발디의 사계가 가을 제1악장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이권 시집 『아버지의 마술』 애지. 2015.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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