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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소개할 시는 손병걸 시인의 ‘아이가 아빠를 키운다’입니다. 군 특수부대 출신인 손병걸 시인은 후천성 시각장애자입니다. 시 속에 나오는 화자 초등학교 3학년 아이가 이제는 커서 25살의 숙녀가 되었습니다. 나는 열 개의 눈동자를 가졌다는 손병걸 시인. 조만간 만나서 막걸리 한잔하여야겠습니다.
아이가 아빠를 키운다 / 손병걸
아빠 식사하세요
밥때만 되면
아이의 목소리가 들린다
자식이라고는 단 하나
고작, 초등학교 3학년
생일이 빨라서 3학년이지
이제 아홉 살짜리다
밥상에 앉으면
이건 김치, 빨개요
요건 된장찌개, 뜨거워요
두 눈이 안 보이는 아빠를 위해
제 입에 밥알이 어찌 되든지 말든지
오른쪽에 뭐 왼쪽에 뭐
아이의 입은 바쁘다
요란한 밥상이 물러나면
커피는 두 스픈
설탕은 한 스픈 반
크림은 우유가 좋다며
책상 앞에 앉아 있는 내게
깡충깡충 커피를 가져다 준다
아홉 살짜리 아이가
아빠를 키운다
출처 손병걸 시집 『나는 열 개의 눈동자를 가졌다』 도서출판 애지.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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