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 광고 모금 캠페인
본문 바로가기
  • 너에게 반하다.
명시 산책

散文詩(산문시) 1 / 신동엽

by 시(詩) 배달부 2024. 4. 11.
반응형

 

이미지출처 pixabay.

 

  오늘 소개할 시는 ‘껍데기는 가라’로 유명한 신동엽 시인의 ‘散文詩(산문시) 1’이라는 시입니다. 이 시에 나오는 화자 석양 대통령은 실재했던 인물로 스웨덴의 대통령 올로프 팔메입니다. 석양 무렵 퇴근길에 딸아이 손을 잡고 경호원도 없이 칫솔 사러 시장에 나오던 대통령, 결국 암살자의 총탄에 맞아 세상을 떠납니다. 우리에게도 봉하마을에서 자전거 짐받이에 손녀를 태우고 들길을 달리던 대통령 아저씨가 있었지요. 자전거 뒤꽁무니에 막걸리를 싣고 삼십 리 시인의 집을 찾아가는 석양 대통령이 우리에게는 언제나 찾아오려는지요.

 

 

散文詩(산문시) 1 / 신동엽

 

 

   스칸디나비아라든가 뭐라구 하는 고장에서는 아름다운 석양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업을 가진 아저씨가 꽃 리본 단 딸아이의 손 이끌고 백화점 거리 칫솔 사러 나오신단다. 탄광 퇴근하는 광부들의 작업복 뒷주머니마다엔 기름 묻은 책 하이덱거 럿셀 헤밍웨이 莊子(장자) 휴가 여행 떠나는 국무총리 서울역 삼등 대합실 매표구 앞을 뙤약볕 흡쓰며 줄지어 서 있을 때 그걸 본 서울역장 기쁘시겠소라는 인사 한마디 남길 뿐 평화스러이 자기 사무실 문 열고 들어가더란다. 남해에서 북강까지 넘실대는 물결 동해에서 서해까지 팔랑대는 꽃밭 땅에서 하늘로 치솟는 무지개빛 분수 이름은 잊었지만 뭐라군가 불리우는 그 중립국에선 하나에서 백까지가 다 대학 나온 농민들 추럭을 두 대씩이나 가지고 대리석 별장에서 산다지만 대통령 이름은 잘 몰라도 새이름 꽃이름 지휘자이름 극작가이름은 훤하더란다 애당초 어느 쪽 패거리에도 총 쏘는 야만엔 가담치 않기로 작정한 그 知性(지성) 그래서 어린이들은 사람 죽이는 시늉을 아니 하고도 아름다운 놀이 꽃동산처럼 풍요로운 나라, 억만금을 준대도 싫었다 자기네 포도밭은 사람 상처 내는 미사일기지도 탱크기지도 들어올 수 없소 끝끝내 사나이 나라 배짱 지킨 국민들, 반도의 달밤 무너진 성터가의 입맞춤이며 푸짐한 타작 소리 춤 思索(사색)뿐 하늘로 가는 길가엔 황톳빛 노을 물든 석양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함을 가진 신사가 자전거 꽁무니에 막걸리병을 싣고 삼십 리 시골길 시인의 집을 놀러 가더란다.

 

1968년 월간문학 창간호 발표.

 

 

 

 
반응형

'명시 산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수묵水墨 정원 9 /장석남  (125) 2024.04.18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 황지우  (75) 2024.04.15
아이가 아빠를 키운다 / 손병걸  (109) 2024.03.31
헤어지는 연습을 하며 / 조병화  (110) 2024.03.25
치자꽃 설화 / 박규리  (107) 2024.03.19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