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소개할 시는 이상화 시인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입니다. 이상화 시인은 1901년 대구에서 출생하여 1943년에 작고한 일제 강점기 시대 항일 저항 운동의 시인입니다. 1926년 6월 「개벽」이라는 잡지에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발표하였습니다. 식민지 시대 조국의 광복을 기리는 이 시는 뛰어난 항일 시로, 독재 권력과 맞서던 이들에게 널리 불리우던 시입니다. 아직도 역사를 망각한 친일파들이 설치는 세상. 우리가 기다리는 진전한 봄(해방)은 오지 않았나 봅니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 이상화
지금은 남의 땅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내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 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 자욱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다리는 울타리 너머 아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 같은 머리털을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혼자라도 가쁘게나 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 기름을 바른 이가 지심 매던 그 들이라 다 보고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 다오.
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웃어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지폈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 ―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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