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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소개할 시는 고영민 시인의 ‘앵두’입니다. 둥글고 빨간 화이바를 앵두라고 표현한 시인. 가랑이를 오므리고 빨간 화이바를 쓰고 스쿠터를 타고 온 그녀는 누구일까요. 껌을 씹으며 커피 배달 온 붉은 루주를 칠한 정다방 미스김일까요, 아니면 솜털 보송한 사촌 여동생이 스쿠터를 타고 오빠 집에 놀러 온 것일까요. 깜찍하고 당돌한 이미지가 그려지는 한 폭의 수채화 같은 풍경, 그녀의 정체가 궁금해집니다.
앵두 / 고영민
그녀가 스쿠터를 타고 왔네
빨간 화이버를 쓰고 왔네
그녀의 스쿠터 소리는 부릉부릉 조르는 것 같고, 투정을 부리는 것 같고
흙 먼지를 일구는 저 길을 쒱, 하고 가로질러왔네
가랑이를 오므리고
발판에 단화를 신은 두 발을 가지런히 올려놓고
허리를 곧추세우고,
기린의 귀처럼 붙어 있는 백미러로
지나는 풍경을 멀리 훔쳐보며
간간, 브레끼를 밟으며
그녀가 풀 많은 내 마당에 스쿠터를 타고 왔네
둥글고 빨간 화이바를 쓰고 왔네
출처 고영민 시집 『공손한 손』 창비,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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