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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판매기 / 최승호
오렌지 주스를 마신다는 게
커피가 쏟아지는 버튼을 눌러 버렸다
습관의 무서움이다
무서운 습관이 나를 끌고 다닌다
최면술사 같은 습관이
몽유병자 같은 나를
습관 또 습관의 안개나라로 끌고 다닌다
정신 좀 차려야지
고정관념으로 굳어 가는 머리의
자욱한 안개를 걷으며
자, 차린다, 이제 나는 뜻밖의 커피를 마시며
돈만 넣으면 눈에 불을 켜고 작동하는
자동판매기를
매춘부賣春婦라 불러도 되겠다
황금黃金 교회라 불러도 되겠다
이 자동판매기의 돈을 긁는 포주는 누구일까 만약
그대가 돈의 권능權能을 이미 알고 있다면
그대는 돈만 넣으면 된다
그러면 매음賣淫의 자동판매기가
한 컵의 사카린 같은 쾌락을 주고
십자가十字架를 세운 자동판매기는
신神의 오렌지 주스를 줄 것인가
출처 ; 최승호 시집 『고슴도치의 마을』 1985년. 문학과 지성사.
* 오늘 소개한 시는 최승호 시인의 ‘자동판매기’이다. 습관의 무서움. 최면에 걸린 것처럼 자동으로 무의식으로 행해지는 습관. 돈만 넣으면 눈에 불을 켜고 내가 원하는 것을 내어주는 자동판매기를 시인은 매춘부나 황금교회라고 부른다. 돈의 권능. 시인은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 해결해 주는 천민자본주의 세태를 고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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