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소개할 시는 칠레의 민중 시인 파블로 네루다의 시(詩)를 소개합니다. 정현종 시인께서 우리말로 옮기셨습니다. 시는 설명할 수 없으며 가슴으로 느껴야 한다는 네루다. 시가 어디서 왔을까요? 저 바삐 움직이는 군중 속에서, 아니면 강이나 들에서, 아름다운 꽃에서, 눈과 비와 바람에서, 당신이 밤새 읽은 소월 시집에서, 오늘도 당신을 흔들고 있는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과연 시는 어디서 왔을까요.
시(詩) / 파블로 네루다
그러니까 그 나이였어… 시가
나를 찾아왔어. 몰라, 그게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어, 겨울에서인지 강에서인지.
언제 어떻게 왔는지 모르겠어,
아냐, 그건 목소리가 아니었고, 말도
아니었으며, 침묵도 아니었어,
하여간 어떤 길거리에서 나를 부르더군,
밤의 가지에서,
갑자기 다른 것들로부터,
격렬한 불 속에서 불렀어,
또는 혼자 돌아오는데,
그렇게, 얼굴 없이
그건 나를 건드리더군.
나는 뭐라고 해야 할지 몰랐어, 내 입은
이름들을 도무지
대지 못했고,
눈은 멀었어.
내 영혼 속에서 뭔가 두드렸어,
열(熱)이나 잃어버린 날개,
그리고 내 나름대로 해 보았어,
그 불을
해독하며,
나는 어렴풋한 첫 줄을 썼어
어렴풋한, 뭔지 모를, 순전한
난센스,
아무것도 모르는 어떤 사람의
순수한 지혜;
그리고 문득 나는 보았어
풀리고
열린
하늘을,
유성(流星)들을,
고동치는 논밭
구멍 뚫린 어둠,
화살과 불과 꽃들로
들쑤셔진 어둠,
소용돌이치는 밤, 우주를.
그리고 나, 이 미소(微小)한 존재는
그 큰 별들 총총한
허공에 취해,
신비의
모습에 취해
나 자신이 그 심연의
일부임을 느꼈고,
별들과 더불어 굴렀으며,
내 심장은 바람에 풀렸어.
출처 「네루다 시선」 정현종 옮김, 민음사,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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