털 난 꼬막 / 박형권
아버지와 어머니가 염소막에서 배꼽을 맞추고 야반도주할 때
가덕섬에서 부산 남포동에 닿는 물길 열어준 사람은 오촌 당숙이시고
끝까지 추적하다 선창에서 포기한 사람들은 외삼촌들이시고
나 낳은 사람은 물론 어머니이시고
나 낳다가 잠에 빠져들 때 뺨을 때려준 사람은 부산 고모님이시고
나하고 엄마, 길보다 낮은 집에 남겨두고
군대에 간 사람은 우리 아버지시고
젖도 안 떨어진 나 안고 ‘천신호’를 타고, 멀미를 타고 가덕섬으로
돌아온 사람은 할머니시고
빨아 먹을 사람 없어지자 젖이 넘쳐나
염색공장 변소 바닥이 하얗도록 짜낸 사람은 다시 우리 어머니시고
젖 대신 감성돔 낚아서 죽 끓여 나를 먹인 사람은
큰아버지시고
무엇을 씹을 때부터
개펄에서 털 난 꼬막 캐와서 먹인 사람은 큰어머니시고
그렇게 저녁마다 차나락 볏짚으로 큰아버지 주먹만 한 털 난 꼬막
구워주신 사람 큰어머니시고
한 번씩 나 안아보러 오는 우리 엄마에게
덕석에서 늦은 저녁상을 받으며
욕 잘하는 우리 큰어머니
니 털 난 꼬막으로 나왔다고 다 니 새끼냐 하셨을 것 같고
우리 엄마 울고
우리 엄마 울고
털 난 꼬막 목젖에 걸려 넘어가지 않고
* 오늘 소개한 시는 박형권 시인의 ‘털 난 꼬막’이다. 이런 리얼리티의 날 것의 싱싱한 야생을 만나면 할 말을 잃는다. 염소막에서 아버지와 어머니가 배꼽을 맞추고부터 화자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화자와 떨어져 육지에서 염색공장에 다니는 엄마는 젖을 물려줄 아이가 없어 변소 바닥에 퉁퉁 불은 젖을 짜낸다. 가덕섬에서는 큰 아버지가 감성돔을 잡아 엄마 젖 대신 죽을 끓여 먹이고 큰어머니는 털 난 꼬막 구워주시며 엄마 대신 화자를 키운다. ‘니 털 난 꼬막으로 나왔다고 다 니 새끼냐’ 하는 대목에서 목이 꽉 멘다. 아이만 낳아 놓고 키우지 못하는 엄마를 탓하는 것 같고, 내가 감성돔 죽 끓여 먹여 주고 털 난 꼬막 구워 먹여 키워주었으니 내 자식이라는 말 같기도 하다. 우리 엄마 울고 털 난 꼬막 목젖에 걸려 넘어가지는 않는 염치없는 하루가 오늘도 가덕섬 큰아버지댁 사립문에 걸려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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