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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소개할 시는 저의 첫 번째 시집 『아버지의 마술』에 수록된 ‘거미’입니다.
거미 / 이권
저물녘 허공을 재단하고 있는 거미
바람의 나들목 배롱나무 가지에 그물을 치고 있다
오래전 한 여자를 불러들이기 위해
동쪽 하늘을 헐어 그녀가
지나가는 여울목에 그물을 친 적이 있다
그녀의 몸에 알을 슬어 사랑의
일가를 이루기 위한 요량이었다
푸른 벌판을 건너가는 민들레꽃씨와
저녁노을이 잠시 지나갔을 뿐
눈먼 고기 한 마리 잡히지 않았다
딱따구리가 한 땀 한 땀 가을 산을
박음질하는 오후 거미가 한 번의
합방을 위해 출렁다리를 건너가고 있다
흘레가 끝나면 암컷이 수컷을
잡아먹고 마는 저 치명적인 사랑
그렇게 사랑은 배롱나무 가지에 허묘 하나
만들어 놓고 천 길 절벽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이권 시집 『아버지의 마술』 애지. 20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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