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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에게 반하다.
이권 첫 번째 시집 『아버지의 마술』

거미 / 이권

by 시(詩) 배달부 2024. 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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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출처 pixabay.

 

오늘 소개할 시는 저의 첫 번째 시집 『아버지의 마술』에 수록된 ‘거미’입니다.

 

 

거미 / 이권

 

 

저물녘 허공을 재단하고 있는 거미

바람의 나들목 배롱나무 가지에 그물을 치고 있다

 

오래전 한 여자를 불러들이기 위해

동쪽 하늘을 헐어 그녀가

지나가는 여울목에 그물을 친 적이 있다

 

그녀의 몸에 알을 슬어 사랑의

일가를 이루기 위한 요량이었다

 

푸른 벌판을 건너가는 민들레꽃씨와

저녁노을이 잠시 지나갔을 뿐

눈먼 고기 한 마리 잡히지 않았다

 

딱따구리가 한 땀 한 땀 가을 산을

박음질하는 오후 거미가 한 번의

합방을 위해 출렁다리를 건너가고 있다

 

흘레가 끝나면 암컷이 수컷을

잡아먹고 마는 저 치명적인 사랑

 

그렇게 사랑은 배롱나무 가지에 허묘 하나

만들어 놓고 천 길 절벽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이권 시집 『아버지의 마술』 애지. 20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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