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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정 고무줄에는 / 김영남
내복의 검정 고무줄을
잡아 당겨본 사람이면 알 겁니다
고무줄에는 고무줄 이상이 들어 있다는 것을
그 이상의 무얼 끌어안은 손, 어머니가 존재한다는 것을
그것으로
무엇을 묶어본 사람이면 또 알 겁니다
어머니란 늘어났다 줄어들었다 한다는 것을
그래야 사람도 단단히 붙들어 맬 수 있다는 것을
훌륭한 어머니일수록 그런 신축성을 오래오래 간직한다는 것을
그러나, 그 고무줄과 함께
어려운 시절을 살아보지 않은 사람은 잘 모를 겁니다
어머니란 리어카 바퀴처럼 둥근 모습으로도 존재한다는 것을
그 둥근 등을 굴려 우리들을 큰 세상으로 실어낸다는 것을
그리하여 이 지상 모든 고무줄을 비교해본 사람이면 알 겁니다
세상에서 제일 훌륭한 고무줄이 나의 어머니라는 것을
출처 : 김영남 시집. 「푸른 밤의 여로」』 문학과지성사, 2006.
* 오늘 소개한 시는 김영남 시인의 ‘검정 고무줄에는’ 시입니다. 어릴 적 내복이나 팬티 줄이 끊어지면 검정 고무줄로 다시 내복 끈을 동여 매주던 가난한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기쁨과 슬픔이 근심과 걱정이 고무줄처럼 늘어났다 줄어들던 어머니. 그 둥근 탄력으로 아이들을 키워 세상 밖에 내어놓았습니다. 세상에 가장 훌륭한 고무줄이었던 어머니. 아직도 자식 걱정이 태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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