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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소개할 시는 저의 시작 노트에 들어있는 미발표 시 '마추픽추'입니다.
마추픽추 / 이권
친구들과 인디언식 이름 짓기 놀이하다가, 문득 발밑 세상이 궁금해질 때가 있다. 발밑을 한 열 길쯤 파 내려가다 보면 검은 어둠이 자라고 있는 오래된 마을 하나가 나타날 것이다. 거기서 한 열흘쯤 더 파 내려가다 보면 끝과 끝이 내통하던 길 하나가 발견될 것이다.
이번엔 반대로 머리 위 어둠 속을 파 올라가다 보면 하늘로 올라가는 계단이 발견될 것이다. 그들이 즐겨 다니던 골목이며 새근새근 잠자고 있는 아기의 숨소리가 들려 올 것이다. 한 마장쯤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보면 안데스산맥에 번지는 저녁노을과 마추픽추에 사는 인디오 전사를 만날 것이다. 나는 두려움에 떨며 지구 반대편 조선에서 온 전사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면 내게 알파카 털로 지은 해진 옷 한 벌 던져 주며 레오나드 미카엘이라는 인디언식 이름을 지어 줄 것이다. 하늘에 콘도르 새가 날고 옛 전사들이 부르는 엘 콘도드 파사 노랫소리가 들려 올 것이다. 지구 끝에 세운 천상의 마을 마추픽추. 오늘도 나는 그곳이 가고 싶어 삽 한 자루 들고 마추픽추 반대편 땅 위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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