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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소개할 시는 저의 시작 노트에 써놓은 미발표 시 ‘애호박’입니다.
애호박 / 이권
호박 나물도 해 먹고 호박전도 부쳐 먹을 요량으로 늦은 봄날 모종 가계에서 호박 모종을 사와 텃밭 가장자리에 심었다. 비가 내리고 앞산에서 뻐꾸기가 몇 번 울었을 뿐인데 호박넝쿨이 텃밭 가장자리를 덮고 호박꽃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서로를 마주 보는 것만으로는 혼례를 치를 수 없었던 호박꽃. 여러 날 불을 밝혔지만, 사랑을 이루지 못한 꽃들은 떨어져 내렸다. 호박벌에게 서로의 사랑을 고백하고 나서야 애호박 몇 개를 매달 수 있었다. 저녁나절 아내는 호박전을 해 먹고 싶다며 호박넝쿨을 뒤졌다.
호박넝쿨이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 호박잎에 숨어있던 애호박을 따냈다. 호박넝쿨이 잠시 움찔거렸고 애호박 떨어진 자리에 눈물처럼 이슬이 맺혔다. 아내는 여름 내내 호박넝쿨에서 애호박을 따낼 것이고, 호박잎은 속수무책 손바닥만 흔들 것이다. 애호박 떨어진 자리에 호박잎 한 장 덮어주고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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