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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소개할 시는 어느 지면에도 발표되지 않은 저의 시작노트에 들어있는 순수 창작시입니다.
흑백 소녀 / 이권
아내가 친목회 계모임 나간 오후
오랜 기간 책갈피 속에 방치되었던 소녀가
흑백의 풍경을 끌고 걸어 나왔다
단발머리에 검정 교복을 입은 소녀
코스모스에 입 맞추며 환하게 웃고 있다
소녀가 책갈피에서 유폐되는 동안
나의 청춘은 시네마스코프*
총천연색의 계절로 들어서고 있었다
꽃이 필 때마다 혼인색을 띤 여자들이
찾아왔지만 그리 오래 머물지는 못했다
빨주노초파남보 언제나 무지갯빛 꿈을 지닌 소녀여
우리 열일곱 살 때의 첫사랑으로 돌아가 추억여행이나 하자고 다짐했건만
소녀는 다시 흑백의 시간 속으로 돌아가고
방안에 정물이 된 늙은 소년 하나 앉아 있다
*시네마스코프는 20세기 폭스가 1953년에 개발한 와이드스크린 상영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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