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소개할 시는 이용악 시인의 ‘전라도 가시내’입니다. 이용악 시인은 1914년 함경북도 경성군에서 태어났으면 1971년 북에서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전라도 가시내’ 는 이용악 시인의 세 번째 시집 『오랑캐꽃』에 수록된 시입니다. 일제 강점기 북간도 술막에서 둘은 만납니다. 식민지 백성으로 부박한 유민의 삶을 사는 함경도 사내와 전라도 어느 섬에서 팔려 온 듯한 전라도 가시내. 둘 다 나라 잃은 설움을 겪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누이같이 서로를 위로하며 연대하려 합니다. 앞으로 나가려 합니다. ‘전라도 가시내’를 읽을 때마다 마음 저리는 아픔은 무슨 이유 때문일까요. 그 옛날 우리 모두의 오빠이었거나 누이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전라도 가시내 / 이용악
알룩조개에 입맞추며 자랐나
눈이 바다처럼 푸를뿐더러 까무스레한 네 얼굴
가시내야
나는 발을 얼구며
무쇠다리를 건너온 함경도 사내
바람소리도 호개도 인전 무섭지 않다만
어두운 등불 밑 안개처럼 자욱한 시름을 달게 마시련다만
어디서 흉참한 기별이 뛰어들 것만 같애
두터운 벽도 이웃도 못미더운 북간도 술막
온갖 방자의 말을 품고 왔다
눈포래를 뚫고 왔다
가시내야
너의 가슴 그늘진 숲속을 기어간 오솔길을 나는 헤매이자
술을 부어 남실남실 술을 따르어
가난한 이야기에 고이 잠거다오
네 두만강을 건너왔다는 석 달 전이면
단풍이 물들어 천리 천리 또 천리 산마다 불탔을 겐데
그래두 외로워서 슬퍼서 초마폭으로 얼굴을 가렸더냐
두 낮 두 밤을 두루미처럼 울어 울어
불술기 구름 속을 달리는 양 유리창이 흐리더냐
차알삭 부서지는 파도소리에 취한 듯
때로 싸늘한 웃음이 소리없이 새기는 보조개
가시내야
울 듯 울 듯 울지 않는 전라도 가시내야
두어 마디 너의 사투리로 때아닌 봄을 불러줄께
손때 수줍은 분홍 댕기 휘 휘 날리며
잠깐 너의 나라로 돌아가거라
이윽고 얼음길이 밝으면
나는 눈포래 휘감아치는 벌판에 우줄우줄 나설 게다
노래도 없이 사라질 게다
자욱도 없이 사라질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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