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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소개할 시는 저의 세 번째 시집 『그럼에도 불구하고』에 실린 ‘집 없는 달팽이’입니다.
집 없는 달팽이 / 이권
세상에서 가장 느린 속도로 집 없는
달팽이가 이삿짐도 없이 이사를 가고 있다
잠시 가던 길을 멈추고 오늘 일진을
점치고 있는 달팽이 그의 뿔이
가리키는 곳으로 저녁 해가 지고 있다
평생 집 한 채 지어본 적도 없고 세간살이
한 번 장만해본 적 없는 집 없는 달팽이
온몸이 부끄러움투성이인 알몸뿐이지만
옷 한 벌 지어 입어본 적이 없다
집이 싫어 집을 버리고 나온 아이들이
달빛 어둠을 덮고 한뎃잠을 자는 마을에는
저보다 큰 집을 등에 지고 사는 죽어서야
제 집을 버리는 명주달팽이를 닮은 족속들이 산다
* 이권 시집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아실. 2023.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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