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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소개할 시는 황지우 시인의 ‘거룩한 식사’입니다. 밥 한술의 치사함과 밥 한술에 원망과 밥 한술에 설움과 밥 한술의 부끄러움. 어찌 보면 먹고사는 일만큼 거룩하고 경이로운 일은 없지요. 오늘도 등 돌리고 혼자 밥을 먹고 있을 당신들을 위한 시. 황지우 시인의 ‘거룩한 식사’입니다.
거룩한 식사 / 황지우
나이 든 남자가 혼자 밥 먹을 때
울컥, 하고 올라오는 것이 있다
큰 덩치로 분식집 메뉴표를 가리고서
등 돌리고 라면 발을 건져 올리고 있는 그에게,
양푼의 식은 밥을 놓고 동생과 눈흘기며 숟갈 싸움하던
그 어린것이 올라와, 갑자기 목메게 한 것이다
몸에 한세상 떠넣어 주는
먹는 일의 거룩함이여
이 세상 모든 찬밥에 붙은 더운 목숨이여
이 세상에서 혼자 밥 먹는 자들
풀어진 뒷머리를 보라
파고다 공원 뒤편 순댓집에서
국밥을 숟가락 가득 떠넣으시는 노인의, 쩍 벌린 입이
나는 어찌 이리 눈물겨운가
* 출처 : 황지우 시집 『어느 날 나는 흐린 酒店에 앉아 있을 거다』 문학과 지성사(1998년)
황지우(본명 황재우) 시인은 1952년 전남 해남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를 졸업했다. 198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 ‘연혁’이 입선되었다. 주요작으로는 ‘거룩한 식사’,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너를 기다리는 동안’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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