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소개할 시는 문태준 시인의 ‘맨발’입니다. 맨발 하면 떠오른 것이 있습니다. 평생 일밖에 모르고 살았던 가난했던 부모님입니다. 굳은살 박인 아버지의 뒤꿈치. 어머니의 낡은 옷. 어린 자식들을 위해 새벽이면 나갔다가 밤늦게 돌아오던 아버지. 열심히 일했지만 늘 빈털터리였습니다. 어물전 개조개처럼 안으로 울음을 삼키면 탁발하듯 맨날 돈 벌러 나갔던 아버지. 양말자국이 그어진 퉁퉁 부은 발을 끌고 움막 같은 집으로 돌아오시곤 하였습니다.
맨발 / 문태준
어물전 개조개 한마리가 움막 같은 몸 바깥으로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죽은 부처가 슬피 우는 제자를 위해 관 밖으로 잠깐 발
을 내밀어 보이듯이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펄과 물속에 오래 담겨 있어 부르튼 맨발
내가 조문하듯 그 맨발을 건드리자 개조개는
최초의 궁리인 듯 가장 오래하는 궁리인 듯 천천히 발을
거두어 갔다
저 속도로 시간도 길도 흘러왔을 것이다
누군가를 만나러 가고 또 헤어져서는 저렇게 천천히
돌아왔을 것이다
늘 맨발이었을 것이다
사랑을 잃고서는 새가 부리를 가슴에 묻고 밤을 견디
듯이 맨발을 가슴에 묻고 슬픔을 견디었으리라
아- 하고 집이 울 때
부르튼 맨발로 양식을 탁발하러 거리로 나왔을 것이다
맨발로 하루 종일 길거리에 나섰다가
가난의 냄새가 벌벌벌벌 풍기는 움막 같은 집으로
돌아오면
아- 하고 울던 것들이 배를 채워
저렇게 캄캄하게 울음도 멎었으리라
* 출처 문태준 시집「맨발」. 창비시선238. 2004년.
문태준 시인은 1970년도 경북 김천에서 출생했다. 1994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에 處暑 외 9편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동서문학상, 노작문학상, 미당문학상, 소월시문학상, 목월문학상을 수상했다. 주요 작품으로는 ‘수런거리는 뒤란’, ‘비가 오려 할 때’, ‘맨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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