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이권 세 번째 시집 『그럼에도 불구하고』62 꽃구경 / 이권 오늘 소개할 시는 저의 세 번째 시집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 실린 '꽃구경'입니다. 꽃구경 / 이권 서해안 고속도로 행담도 휴게소 관광버스 한 대가 멈춰 서자 할머니 몇 분이 우르르 화장실로 몰려간다 얼마나 급한지 화장실 밖에서 치마를 걷어 올리며 들어가는 할머니도 있다 세상살이 팍팍해 여자이기를 포기했던 할머니들이 꽃구경 갔다 돌아가는 길이다 볼일을 마친 할머니 한 분 고쟁이를 추스르며 화장실 문을 나서고 있다 저녁노을 진 행담도 휴게소 할머니 허리춤에 고장 난 해시계 하나 달아주고 싶다 * 이권 시집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아실. 2023. 03. 2024. 2. 29. 뽕짝이 있는 풍경 / 이권 오늘 소개할 시는 저의 세 번째 시집 「그럼에도 불구하고」에 시린 '뽕짝이 있는 풍경'입니다. 뽕짝이 있는 풍경 / 이권 형제 세탁소 김 씨 아저씨가 날마다 물을 뿌리고 다림질하여도 주름살이 펴지지 않는 백마장 영단주택 골목 배호의 돌아가는 삼각지가 쿵짝, 쿵짝 좁은 골목길을 돌고 또 돈다 베토벤의 전원 교향곡보다 비발디의 사계보다 남인수의 애수의 소야곡이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이 불후의 명곡이 되는 곳 나훈아와 남진 이미자와 주현미 장윤정과 박현빈이 여전히 이 골목을 지배하고 있다 들어보나 마나 한 유행가 가사 같은 진부한 사랑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해 내려오는 골목 슬픈 일이 있어도 기쁜 일이 있어도 반 박자 꺾어놓고 리듬을 타는 곳 오늘도 쿵짝, 쿵짝 사분의이박자로 풀리고 있다 * 이권 시집 『그럼에도.. 2024. 2. 23. 눈사람 / 이권 오늘 소개할 시는 저의 세 번째 시집 『그럼에도 불구하고』에 실린 ‘눈사람’입니다. 눈사람 / 이권 엄마 아빠가 눈 내리는 밤을 밤새 굴려 나를 만들어냈어요. 계획에 없던 일이라 즉흥적으로 나를 만들어 세상에 내어놓았나 봐요. 가끔 심술을 부리고 어깃장을 놓을 때마다 엄마 아빠는 자기들을 하나도 닮지 않은 불량한 새끼라고 욕을 했어요. 매일 싸움만 하고 바쁘다는 핑계로 눈사람 하나 만들어주지 않는 가난한 엄마 아빠가 나도 마음에 들지는 않았어요. 어제는 온종일 눈이 내렸어요. 송이송이 쌓이는 함박눈과 하얀 어둠을 뭉쳐 눈사람을 만들었어요. 숯검정을 가져다 눈과 코와 입을 그려 넣었어요. 빨간 모자도 씌워주고 노랑 목도리도 둘러주었어요. 콘돔을 끼워줄까 하다 그만두었어요. 날이 밝자 눈사람은 빨간 모자와 .. 2024. 2. 15. 시(詩) 오늘의 운세 / 이권 오늘 소개할 시는 저의 세 번째 시집 『그럼에도 불구하고』에 시린 ‘오늘의 운세’입니다. 오늘의 운세 / 이권 아침마다 나도 내가 궁금해 오늘의 운세를 본다 삼재가 끼어 근심만 늘어날 일진인지 역마살 낀 방랑기에 몸만 고달픈 하루인지 운수대통할 팔자는 들어 있는지 도화살 낀 내 사랑은 안녕한지 망신살은 끼어있지 않은지 오늘을 점친다 북쪽에서 귀인이 찾아와 꽃길만 걷게 될 것이라는 점괘는 매번 나를 속여 왔으므로 더는 신뢰하지 않는다 어제는 손 없는 날이라 하여 나를 바리바리 싸 들고 너를 마중 나갔지만 너는 오지 않았다 모든 행운은 내가 한눈을 팔고 있는 사이에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몰래 다녀가곤 하였다 * 이권 시집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아실. 2023.03. 2024. 2. 5. 시(詩) 자전거를 타다 / 이권 오늘 소개할 시는 저의 세 번째 시집 『그럼에도 불구하고』에 수록된 ‘자전거를 타다’입니다. 자전거를 타다 / 이권 둥글게 돌아가는 지구 위에서 내가 나를 돌리기 위해 자전거를 탄다 지구가 돈다고 나까지 덩달아 따라 도는 것은 아니지만 자전거가 나를 굴린 만큼 내가 끌고 온 길의 길이만큼 나는 소모된다 사람들이 동쪽에 있던 해를 서쪽으로 밀어내고 저녁을 만들어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 자전거 체인에 감긴 길을 풀어 너에게로 가는 길을 이어놓는다 저를 끌고 다니느라 수고한 자전거 짐받이 끈에 맨날 싸움박질인 둥근 지구 하나 매달려 있다 * 이권 시집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아실. 2023.03. 2024. 1. 29. 하늘 높이 오른 죄밖에 / 이권 오늘 소개할 시는 저의 세 번째 시집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 실린 ‘하늘 높이 오른 죄밖에’ 입니다. 하늘 높이 오른 죄밖에 / 이권 산 너머에서 먹장구름이 몰려오더니 갑자기 하늘과 땅이 어두워진다 팃검불 날리며 여름 들판을 달려가는 바람의 뒷모습이 보인다 천지가 뒤틀리는 천둥소리 거칠게 쏟아지는 장대비 기어코 하늘 한쪽이 무너져 내린다 죄 많은 나야 하늘의 꾸지람 들으며 기도하는 자세로 저 빗속을 걸어가지만 하늘 높이 오른 죄밖에 푸른 이파리 키운 죄밖에 없는 동구 밖 느티나무 온몸을 펼쳐 든 채 한낮의 검은 독재와 맞서고 있다 https://link.coupang.com/a/SBd98 그럼에도 불구하고:이권 시집 COUPANG www.coupang.com "이 포스팅은 쿠팡 파트너스 활동의 일환으로.. 2024. 1. 22. 세상의 모든 경계에는 계급이 있다 / 이권 오늘 소개할 시는 저의 세 번째 시집 『그럼에도 불구하고』에 실린 ‘세상의 모든 경계에는 계급이 있다’입니다. 세상의 모든 경계에는 계급이 있다 / 이권 천당과 지옥 사이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 간수와 죄수 사이 고양이와 쥐 사이 오랜 기간 목숨을 걸고 싸워도 변하지 않는 계급이다 건물주와 세입자 사이 자가 아파트와 임대 아파트 사이 벤츠와 모닝 사이 루이비통과 짝퉁 사이 사모님과 아줌마 사이 모든 계급은 돈의 값으로 환산되어 검은 속내를 드러낸다 노가다 십장과 잡부 사이 원청과 하청 사이 진상 고객과 호갱 사이 자발적으로 갑의 먹이사슬이 되는 계급도 있다 부모의 출신 성분에 따라 평생의 계급이 결정되는 천민자본주의 시대 계절이 바뀌고 해와 달이 모양을 바꿀 때마다 당신은 매번 달라지는 지위를 부여받는다.. 2024. 1. 15. 오리무중 / 이권 오늘 소개할 시는 저의 세 번째 시집 『그럼에도 불구하고』에 수록된 ‘오리무중’입니다. 오리무중 / 이권 그녀와 함께 안개 낀 해변을 걷고 있었다 환한 햇빛 속에서 사랑은 쉽사리 복무하지 않는 법 안개 속에서 모든 사랑은 익명을 요구한 채 안면 몰수된다 한때 바닷가에서 애인 돌려막기가 유행하던 시절이 있었다 무허가 사랑이 성행하는 계절 안개가 걷히고 나면 모든 사랑은 증거 인멸된다 나는 버려진 애인이 되어 그 해변을 떠나왔고 비로소 그녀에게 수집되었다 https://link.coupang.com/a/SBd98 그럼에도 불구하고:이권 시집 COUPANG www.coupang.com "이 포스팅은 쿠팡 파트너스 활동의 일환으로, 이에 따른 일정액의 수수료를 제공받습니다." 2024. 1. 10. 변두리 / 이권 오늘 소개할 시는 저의 세 번째 시집 『그럼에도 불구하고』에 실린 ‘변두리’입니다. 변두리 / 이권 계속되고 있는 장맛비로 목화빌라 올라가는 길이 퉁퉁 불어 있다. 몇 달째 분양되지 않고 있는 목화빌라. 지나가는 바람이 잠시 창문을 두드렸을 뿐 찾아오는 이가 없다. 과잉 공급된 개망초꽃이 환하게 불을 밝히고 떠돌이 개가 순찰을 도는 하루살이 나는 마을. 딱 오 분만 제주 은갈치를 팔고 가겠다는 생선 장수 확성기 소리에 부엌마다 비릿한 가시가 돋아난다. 골목 안 사람들을 하나둘 낚아 올리고 있는 생선 장수. 내일 울음까지 미리 당겨쓴 매미는 여름이 가기도 전에 목이 쉬어버렸다. 비가 올까 말까 망설이는 동안 구름 속에서 잠깐 머리를 내민 햇살이 목화빌라 옥상을 걸어 다녔다. 전입신고도 하기 전에 떠날 것을.. 2024. 1. 5. 당분간 나를 휴업할까 합니다 / 이권 오늘 소개할 시는 저의 세 번째 시집『그럼에도 불구하고』에 실린 ‘당분간 나를 휴업할까 합니다’입니다. 당분간 나를 휴업할까 합니다 / 이권 당신이 깜박하고 나를 잊고 가는 날이면 세상과 연결된 모든 전원을 꺼버리고 나 혼자이고 싶습니다 밤마다 마술을 부리는 저 도시로부터 당신의 사랑으로부터 멀리 달아나고 싶습니다 우리에게 내일이 있다며 나를 재촉하는 당신의 희망 고문으로부터 불편한 친절로부터 도망치고 싶습니다 아니 당신에게 해고되고 싶습니다 나를 켜면 자동으로 당신에게 연결될 수 있도록 설정된 나의 모든 것을 해제하고 당신으로부터 해방되고 싶습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당신의 무례한 사랑으로부터 당분간 나를 휴업할까 합니다 *이권 시집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아실. 2023. 03. https://li.. 2023. 12. 31. 신발 상위시대 / 이권 오늘 소개할 시는 저의 세 번째 시집 『그럼에도 불구하고』에 실린 ‘신발 상위시대’입니다. 신발 상위시대 / 이권 빨주노초파남보 온갖 신발들이 떠돌아다니는 거리. 가만히 바라보면 신발에도 계급이 있다. 반짝반짝 물광이 빛나는 겉만 번지르르한 신사화도 있고, 콧대 높은 줄 모르고 자꾸만 솟아오르려는 칼힐도 있다. 바람이 뻥튀기한 구두보다도 비싼 나이키 운동화도 있고, 어느 산골 오두막집에서 철모르고 내려온 듯한 타이아표 검정 고무신도 있다. 집에 들어가는 것이 죽기보다 싫어 아예 집을 버리고 나온 맨발에 슬리퍼가 있고, 동네 양아치에게 삥 뜯기고 훈계를 듣는 가엾은 꽃신도 있다. 그동안 고생했다며 직장에서 명퇴당한 한없이 구차해진 신발도 있다. 교도소 담벼락에 갇혀 수십 년 동안 징역살이나 하는 말표 흰 .. 2023. 12. 27. 호갱님 전 상서 / 이권 오늘 소개할 시는 저의 세 번째 시집 『그럼에도 불구하고』에 수록된 ‘호갱님 전 상서’입니다. 호갱님 전 상서 / 이권 우리의 영원한 호갱님 근계시하 입춘지절에 그동안 옥체 일양만강하시온지요 당신이 오늘 무엇을 보았는지 무슨 이야기를 들었는지 어떤 호갱 짓을 당하다 왔는지 온종일 당신을 끌고 다닌 구두는 모든 것을 알고 있지만, 묵묵부답 아무런 말이 없습니다 당신의 아이는 미래라는 감언이설에 속아 쭈쭈바를 빨며 가기 싫은 학원에 가고 당신의 아내는 국민은행에 당신을 팔아 한 달에 10만 원씩 붓는 주택종합청약 저축을 들었습니다 시도 때도 없이 호명되다 죽어서까지 불려 나와야 하는 우리의 영원한 호갱인 당신 세세만년 당신의 만수무강을 빌며 소생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 이권 시집 『그럼에도 .. 2023. 12. 21. 이전 1 2 3 4 5 6 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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