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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에게 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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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배달부 오늘의 시27

마추픽추 / 이권 오늘 소개할 시는 저의 시작 노트에 들어있는 미발표 시 '마추픽추'입니다.  마추픽추 / 이권   친구들과 인디언식 이름 짓기 놀이하다가, 문득 발밑 세상이 궁금해질 때가 있다. 발밑을 한 열 길쯤 파 내려가다 보면 검은 어둠이 자라고 있는 오래된 마을 하나가 나타날 것이다. 거기서 한 열흘쯤 더 파 내려가다 보면 끝과 끝이 내통하던 길 하나가 발견될 것이다.  이번엔 반대로 머리 위 어둠 속을 파 올라가다 보면 하늘로 올라가는 계단이 발견될 것이다. 그들이 즐겨 다니던 골목이며 새근새근 잠자고 있는 아기의 숨소리가 들려 올 것이다. 한 마장쯤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보면 안데스산맥에 번지는 저녁노을과 마추픽추에 사는 인디오 전사를 만날 것이다. 나는 두려움에 떨며 지구 반대편 조선에서 온 전사라고 말할 .. 2024. 8. 10.
바다를 훔치는 법 / 이권 오늘 소개할 시는 저의 시작 노트에 들어있는 미발표 시 '바다를 훔치는 법'입니다.  바다를 훔치는 법 / 이권  사내가 노을 진 바다를 훔치고 있다 바다를 훔치는 데는 고도의 테크닉이 필요하다  바다에 산란하는 빛의 양과 머무는 시간을 계산해 완벽한 알리바이를 만들어야 한다  그가 하는 일은 아무도 모르게 훔쳐 온 상처 난 바다의 명암을 다루는 일 저녁 바다를 인화할 때마다 그의 방에서 끼룩끼룩 갈매기 날고 파도 소리가 들려온다 금방이라도 울음을 쏟을 것 같은 먹장구름이 둥둥 떠다니는 그의 방  저녁 바다를 끌고 사내의 카메라 속으로 숨어든 여자 그녀의 웃음소리가 저녁 바다와 함께 까맣게 인화되고 있다 2024. 7. 29.
빗방울 연주 / 이권 오늘 소개할 시는 2019년도 시작 노트에 써놓은 미발표된 시 ‘빗방울 연주’입니다.  빗방울 연주 / 이권  차락차락 봄비가 떨어지고 있다 마른 풀 적시며 자박자박 걸어오는 봄비  아직도 떠나지 못한 겨울이 남아 있는지 외양간 함석지붕을 두드리고 있다 마당귀 개밥 그릇에도비에 젖은 음표들에 떨어지고 있다 봄비가 그려내는 동그라미 속 물방울 귀걸이를 한 배롱나무 한 그루 서있다  높은음자리표 내 걸린 하늘도돌이표 찍어대는 봄비 해소병을 앓는 아버지의 기침 소리가 빗속으로 번져갔다 2019. 03. 02. 2024. 6. 18.
해 질 무렵 / 이권 오늘 소개할 시는 제가 2016년도에 시작 노트에 써놓은 미발표 시 ‘해 질 무렵’입니다.  해 질 무렵 / 이권  강변 모래톱 새끼 자라를 등에 업은 어미 자라가 바위에 올라 지는 해를 바라보고 있다 물총새가 하늘 높이 날아오르고 방아깨비가 명아주 가지 끝에 앉아 방아를 찧고 있다 강 건너 숲속에서 뻐꾸기 울고흑염소가 맴맴 새끼 염소를 찾고 있다 탁발승이 사립문 앞에서 반야심경을외우다 긴 그림자를 끌고 돌아갔다 아랫마을에 초상이 났는지 여자의 울음소리가 강바람을 타고 올라왔다 어릴 적 해 질 무렵 일어난 일이다 2024. 6. 12.
마돈나 / 이권 오늘 소개할 시는 아직 발표하지 않은 저의 미발표 시 '마돈나'입니다.  마돈나 / 이권    석남사거리 지하 술집에서 그녀를 만났습니다. 두툼한 입술에 빨간 루주를 칠한 여자 마돈나입니다. 마돈나가 눈물 콧물로 꾹꾹 눌러쓴 사랑 이야기며 슬픔이 오늘의 주제입니다. 마돈나는 수다스럽습니다. 그만큼 세상에 따질 일 많고 세상을 속일 일 또한 많았다는 것이겠지요.   마돈나의 몸매가 너무 은유적이라는 것입니다. 모든 문장은 마돈나에 의해 편집되고 그것에 대해 사내들은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고 서술되어 있습니다. 차마 말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 그녀의 몸 곳곳에 숨겨져 있겠지요. 뒷골목의 스산한 풍경이며 질그릇 깨지는 소리. 팔자를 고치려다 생긴 상처들 아마 밑줄이 쳐져 있을 겁니다.    마돈나가 심수봉의 남.. 2024. 5. 6.
시(詩) 봄은 노랗다 / 이권 오늘 소개할 시는 2023년 인천작가회의 신작 시집 『내일은 비가 온다던데』 에 발표한 저의 시 ‘봄은 노랗다’ 입니다. 봄은 노랗다 / 이권 발뒤꿈치 들고 목을 길게 빼 들어도 반 뼘 정도의 키를 지닌 꽃 겨우내 땅속에서 노란빛을 끌어모았을 것이다 휘파람새 소리와 함께 목련꽃이 하얗게 봄을 밝혀도 소월의 진달래꽃이 약산에 연분홍으로 피어나도 봄은 여전히 노랗다 리라유치원 개나리반 아이들처럼 노란 모자를 쓰고 봄 소풍을 나온 민들레 봄 들판에 꽃 한 송이 내밀었을 뿐인데 사방이 온통 노랗다 하늘을 적시는 뻐꾸기 울음소리도 노랗고 봄 들판을 건너가는 바람 소리도 노랗다 2024. 2. 13.
시(詩) 미당장에 간 엄니는 돌아오지 않고 오늘 소개할 시는 ‘내일을 여는 작가’ 2023년 겨울호 85에 발표된 저의 시 ‘미당장에 간 엄니는 돌아오지 않고’입니다. 미당장에 간 엄니는 돌아오지 않고 / 이권 장다리꽃 핀 남새밭을 지나 개구리 울음소리 지천인 논두렁 길을 따라 미당장에 간 엄니를 산그늘 내린 내티재까지 마중 나간 적이 있지요 내티재를 넘어온 엄니에게서 부레옥잠 같은 물큰한 물비린내가 났지요 오랜만에 찾은 옛집 손님으로 찾아온 나를 개망초꽃이 환하게 맞이하고 있었지요 나에게도 사랑이 찾아올까 아카시아 꽃잎으로 꽃 점을 치던 산길을 따라 미당장에 간 엄니를 내티재까지 마중 나갔지만요 50년이 지나도 미당장에 간 엄니는 돌아오지 않고 내티재에 뻐꾸기 울음소리만 한 질씩 자라나고 있었지요 2024. 2. 9.
친애하는 시장님 / 이권 오늘 소개할 시는 인천작가회의 2023년 시선집 「내일은 비가 온다던데」 에 발표한 저의 시 '친애하는 시장님' 입니다. 친애하는 시장님 / 이권 멀쩡한 보도블록 자꾸만 바꾸지 마시고요 흰나비 노랑나비 훨훨 나는 예쁜 꽃길이나 하나 만들어 주세요 아무리 정치가 개판이라지만 우르르 몰려와 사진만 박고 가시는 시장님 산허리 두 동강 내는 저 수상한 골프장 허가만 내주시지 마시고요 아이들 뛰어놀 수 있는 코뿔소 놀이터나 만들어 주세요 네 편 내 편 갈리어 자꾸만 뒷구멍에서 호박씨 까시는 시장님 정권이 바뀌어도 시장이 바뀌어도 별반 달라진 게 없다는데요 아직도 집 밖을 떠도는 아이들이 있다는데요 매 맞고 사는 여자가 있다는데요 굶고 사는 사람이 있다는데요 시장님 통빡 그만 굴리시고요 계산기도 그만 두드리고요 사.. 2024. 1. 31.
2024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새해 첫 기적 / 반칠환 황새는 날아서 말은 뛰어서 거북이는 걸어서 달팽이는 기어서 굼벵이는 굴렀는데 한날 한시 새해 첫날에 도착했다 바위는 앉은 채로 도착해 있었다 .......................................................................... 2024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저의 티스토리를 찾아 주시는 블로거님들. 새해에는 소망하시는 일들 모두 이루시고 즐거운 일만 가득하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쓴 시와 제가 소개한 시를 읽고 조금이나마 마음의 위안을 얻었으면 합니다. 2024년 새해 모두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새해 아침 시 배달부 올림. 이권 시집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아실. 2023. 03. https://link.coupang.co.. 2024. 1. 1.
오늘의 문장 오늘 배달할 시는 저의 첫 번째 시집 「아버지의 마술」에 실린 '오늘의 문장'입니다. 오늘의 문장 / 이권 장곡사 초잎 물푸레나무 숲 일필휘지의 필체로 바람 風(풍)자를 새겨 넣고 있는 하늬바람 찔레나무 넝쿨 속 며칠째 풍장 되고 있는 까마귀 한 마리 그를 수식하던 것들이 하나 둘 사라질 때마다 검은 새의 갑골문자가 한 획 한 획 완성되고 있다 훗날 내 몸에서 사람 人(인)자 새겨진 갑골문자 하나 수습할 수 있을까 서늘한 그늘 속 환하게 빛나고 있는 까마귀 烏(오) 오늘 읽어 본 글귀 중 가장 완벽한 문장이다 *이권 시집 [아버지의 마술] 애지. 2015.06. https://link.coupang.com/a/UyWuN 아버지의 마술:이권 시집 COUPANG www.coupang.com 2023. 11. 29.
헌 구두의 이별법 / 이권 오늘 소개할 시는 저의 어느 시집에도 발표되지 않은 미발표 시 '헌 구두의 이별법' 입니다.  헌 구두의 이별법 / 이권    저는 십 년 전 주인님께서 금강제화 상설매점에서 구매한 260mm 리갈 검정 구두에요. 새 구두이었을 때 주인님 발과 제가 맞지 않아 트러블이 일어나긴 했지만, 곧 때 빼고 광내던 호시절이 찾아왔지요. 그때까지만 해도 신발에 대한 예의가 남아있던 때여서 전철 안에서 신발을 밟으면 미안하다고 사과도 하고 맛 간 여자가 강물에 뛰어들 때도 신발만큼은 가지런히 벗어 놓고 뛰어내리던 때였어요.    빨간 불빛만 보면 덩달아 달아오르던 발걸음도 가지 말아야 할 곳을 몰래 다녀온 발걸음도 어둠 속에 몰래 숨겨주곤 하였지요. 아침이 되면 주인님과 제가 다녀왔던 길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 2023. 6. 4.
세상은 온통 물음표뿐이어서 / 이권 오늘 소개할 시는 저의 어느 시집에도 발표되지 않은 미발표 시 ‘세상은 온통 물음표뿐이어서’입니다.  세상은 온통 물음표뿐이어서 / 이권  모든 만물에는 경이롭고 신비로운 그들만의 존재 이유가 있는 법 비 오는 날 강 건너 숲속에서 울던 구렁이 울음소리 꽃이 지고 난 후 내미는 목련 나무의 푸른 손바닥저물녘 깍깍 울어대던 까마귀의 검은 울음소리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미리 와서 나의 이름를 들고 기다리고 있던 개와 고양이 갸우뚱 물음표를 물고 있는 세상 오늘도 보이저1호는 죽음을 향해 열심히 날아갈 것이고 누군가는 죽음의 깊이를 재기 위해 이 세상을 떠나갈 것이다 UFO는 계속해서 우리를 염탐하러 올 것이고 그들만의 언어로 오류 가득한 해석을 내놓을 것이다 세상은 온통 귀신들 뿐이어서 온갖 미사여구를 장.. 2023. 5.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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